신림동 고시촌에서 있었던 일
대학 다니던 중에 집을 헐고 새로 지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집 새로 짓는다고 옆집에서 딴지 거는 것 만큼 못된 이웃 있겠냐시던 옆집 아줌마는 집을 헐자마자 옆집 공사로 지반에 균열이 갔네, 벽에 금이 갔네, 민원을 제기했고, 그 바람에 한 2년 정도를 학교 기숙사며 친척집이며 단칸 월세방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여전히 빡쎄게 공부만 하고 계신가들?
결국 그때의 땅에 집을 짓지 못하고 10년 이상 살던 신림동을 떠나 사당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추상같은 마눌님의 위세에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예전에 나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 오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떠돌아 다니던 그 2년 동안 여러 친구의 집을 전전했는데,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9동(지금은 대학동으로 지명이 바뀌었지만)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기생했었다. 친구 집에서 자게 되면 당연히 잠만 달랑 자게 되지 않는다. 맥주라도 사다가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따라 술이 좀 잘 넘어가서 있는 맥주를 다 마시고 술을 더 사기 위해 친구 집을 나서게 됐다. 나온 김에 비됴라도 한 편 빌릴려구 비됴가게로 가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졸라 화끈한 액숑 영화 하나 하구 졸라 쌔끈한 빠굴 무비 하나를 빌려야 할텐데 몬 영화를 빌려야 하느냐로 고민 때리며 걷고 있는 우리 앞에서 어떤 여자애 하나와 남자애 둘이 뛰어 오고 있었고, 그 뒤로 방범 아저씨 둘이 쫓아오고 있었다.
여자애는 거의 고삐리거나 막 졸업한 것처럼 보였고, 남자애 둘은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녀석들이었다. 여자애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뛰다가 우리 바로 앞에서 넘어졌는데, 50대 후반은 족히 되었음직한 방범 아저씨들이 헉헉거리며 뛰어 와서는 여자애를 붙잡았다.
방범 아저씨 1 : 아니, 왜 멀쩡한 빽미러를 부수고 도망 가?
방범 아저씨 2 : 도망간 남자애들, 친구들이지?
여자애 : 아이- 씨- 놔요! 존나 재수없네...
방범 아저씨 1 : 뭐? 아니, 요 쪼그만 게 말하는 거 좀 보게.
그때 먼저 도망갔던 남자애 두 넘이 다시 돌아왔다.
남자애 1 : 아저씨! 왜 남의 여자 손을 만지고 그래요?
남자애 2 : 야, 저치들이 너 때렸냐?
도망갔던 넘들이 돌아와서 잘 됐다고 잡으려 했던 방범 아저씨들은 어이가 없어졌다. 어쨌거나 파출소로 가자고 두 넘을 붙잡아서 데려 가려는데, 두 넘은 우리가 왜 가냐고 버팅기고 하는 사이 여자애는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 버렸다.
남자애 1 :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래?
남자애 2 : 당신들 혼 좀 나 볼래?
말투가 조금씩 거칠어지던 이 넘들 입에서 욕설까지 나왔다.
남자애 1 : 시바! 조또 아닌 것들이 피곤하게 하네, 정말...
근데 자신의 자식뻘 밖에 안 돼 보이는 새파란 넘들의 기고만장한 큰소리를 들으면서 방범 아저씨들은 오히려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방범 아저씨 1 : 그러게 왜 아무 죄도 없는 빽미러를 때려 부수고 그래?
남자애 2 : 시바!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증거 있어? 증인 있냐구?
방범 아저씨 2 : 여자애가 그러는 건 내가 직접 봤어. 너희들 그 여자애하고 친구지?
남자애 1 : 아- 우리는 모른데도 그러네. 이거 안 놔? 존 말 할 때 이거 놔!!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도저히 더이상 눈 뜨고 못 봐 줄 지경이었다. 당시 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세상 무서븐 줄은 모르고 지 잘난 줄만 알고 날뛰던 때라 겁대가리 짱박았던 모양이었다. --;;
나 : 뭐, 요따우 개 씨박 쉐히들이 다 있어? 너 일루 와!! 요 씹새야.
그러고는 남자애 한 넘의 멱살을 움켜쥐고 면상에 주먹을 막 날리려는데 방범 아저씨가 결사적으로 나를 막아섰다.
나 : 잠깐만 놔 주세요, 아저씨. 저 조까튼 씹쉐히들이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눈깔을 좀 뜨게 해 줘야겠어요.
방범 아저씨 1 : 학생, 왜 그래? 학생이 그러면 우리가 더 곤란해져.
그 말을 듣자, 어디서 산적같이 생긴 떨거지가 나타나서 깽판을 치자 잠깐 쫄았던 남자애들이 그거 좋은 수다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모양이었다.
남자애 2 : 당신은 뭐야? 방범하구 짜구 그러는 거지?
남자애 1 : 어디 돈 많으면 때려 봐! 때려 봐!
그러면서도 방범 아저씨들 뒤로 숨는 꼬라지를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서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나 : 아저씨, 애네들 우리가 델구 갈게요. 우리가 쫌만 델구 있다가 파출소로 보내 줄테니 아저씨들 먼저 가 계세요.
흥분해서 펄쩔펄쩍 뛰어 오르는 나를 친구와 방범 아저씨들이 간신히 말렸고, 그 넘들이 방범 아저씨들의 호위를 받으며 파출소로 가는 걸 쫓아갔다가 방범 아저씨들이 따라 오면 안 된다는 간절한 애원에 나는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서 길가에서 악을 바락바락 질러댔다.
나 : 뭐, 이런 조까튼 세상이 다 있냐? 세상에 자기 아버지뻘은 되는 아저씨한테 별 조까튼 애숭이 씹쉐히가 욕지거리를 해 대는데 지나가는 그 많은 쉐히들 중에서 한 넘도 그 애숭이한테 한마디 하는 넘이 없냐? 그렇게 지 몸 하나 존나 잘 건사해서 고시공부만 존나 열쉼히 해라. 그렇게 판검사 돼면 울나라 존나 좋은 나라 돼겠다, 씨벌. 캬- 악- 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