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ism, 譫妄, 망상...

차도 가장자리에 자전거와 함께 사람이 넘어져 있다. 사이클복을 입고 헬멧과 보호장구를 쓰고 있었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구별되지 않았다. 몸짓과 덩치로 보아 여자인 듯하다. 발목 언저리에 얹혀 있는 자전거의 무게가 버거운 듯 꿈틀거렸다. 어떤 사고로 넘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난간이 있어서 몰려든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난간을 넘어서 자전거 아래 깔린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이던 자동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차도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자동차를 운전 중이던 여자가 차에서 내려 넘어진 사람에게 다가갔다. 꿈틀거리기만 할 뿐 자전거를 밀쳐내지 못하던 사람을 도와 여자는 자전거를 들어 올려 옆으로 밀었다. 자전거를 치운 여자는 넘어진 사람을 부축해 일으켜 보려 했지만, 넘어진 사람의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신호 대기 중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에 시선이 갔던 남자는 넘어진 사람을 발견하였다. 넘어진 사람이 꿈틀거리며 자전거조차 들어 올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작은 사고가 아님을 직감하였다. 차를 세우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급한 업무로 시각을 다투어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상황이 막아섰다.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는 중에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여자가 나타났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씁쓸한 자괴감이 같이 들었다. 신호가 변해 차를 진행시켜야 했기에 그 이후의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급한 업무는 처리하였지만, 자전거를 들어 올리지 못해 꿈틀거리던 넘어진 사람의 모습이 종일 남자의 눈에 어른거렸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조차 이다지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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