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ism, 譫妄, 망상...

차도 가장자리에 자전거와 함께 사람이 넘어져 있다. 사이클복을 입고 헬멧과 보호장구를 쓰고 있었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구별되지 않았다. 몸짓과 덩치로 보아 여자인 듯하다. 발목 언저리에 얹혀 있는 자전거의 무게가 버거운 듯 꿈틀거렸다. 어떤 사고로 넘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난간이 있어서 몰려든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난간을 넘어서 자전거 아래 깔린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이던 자동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차도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자동차를 운전 중이던 여자가 차에서 내려 넘어진 사람에게 다가갔다. 꿈틀거리기만 할 뿐 자전거를 밀쳐내지 못하던 사람을 도와 여자는 자전거를 들어 올려 옆으로 밀었다. 자전거를 치운 여자는 넘어진 사람을 부축해 일으켜 보려 했지만, 넘어진 사람의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신호 대기 중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에 시선이 갔던 남자는 넘어진 사람을 발견하였다. 넘어진 사람이 꿈틀거리며 자전거조차 들어 올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작은 사고가 아님을 직감하였다. 차를 세우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급한 업무로 시각을 다투어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상황이 막아섰다.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는 중에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여자가 나타났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씁쓸한 자괴감이 같이 들었다. 신호가 변해 차를 진행시켜야 했기에 그 이후의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급한 업무는 처리하였지만, 자전거를 들어 올리지 못해 꿈틀거리던 넘어진 사람의 모습이 종일 남자의 눈에 어른거렸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조차 이다지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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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방영할 때는 본방 사수하지 않던 아내가 며칠에 걸쳐 <왔다! 장보리>를 다시보기로 1회부터 마지막까지 틈날 때마다 시청하는 통에 나 역시 <왔다! 장보리>를 군데군데 보게 되었다. 그동안 원체 화제가 되었던 연속극이었기에 뉴스를 통해서,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즐겨 보시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주말 가족 모임에서 잠깐씩 어머니와 함께 시청한 기억을 통해서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건너뛰면서 보게 되니 아내에게 중간의 내용을 물어가면서까지 <왔다! 장보리>를 시청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이 연속극의 성공 요인은 연민정이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 연민정의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에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나 한없이 선량해서 한없이 고통받는 장보리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연민정에게 반드시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나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연민정의 욕망 자체를 비난하거나 그것에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민정의 욕망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것, 더불어 성공하고 싶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연민정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그 욕망 보다는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연민정이 저지르는 소시오패스적인 만행에 분노하는 것이리라.

 


 부모와 자식과,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자매나 마찬가지일 수 있는 사람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그들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이용하고, 사랑이나 우정,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심성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자신의 편의대로 활용하고, 그 모든 행위에 단 한 치의 죄의식이라든가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합리화하는 유체이탈의 최극단을 보여주는 연민정에게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 연민정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자신으로 인해 발생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은 오로지 다른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것이며, 설혹 그 희생과 고통이 일부 있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이득을 주기 위한 자신의 충정에 의한 것이므로 그러한 희생이나 고통은 감내해야 할 필연적인 부산물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연민정의 모습은 쥐와 닭의 계보로 이어진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필수적인 성향이지 않은가!

 


 연속극은 특성상 언젠가는 끝을 맺어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는 달리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선악의 구도에서는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작가가 열린 구도를 채택하고 싶어도 연민정 같은 인물이 호의호식하며 살고 장보리는 끝내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연속극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장보리>와 같은 연속극에 심취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러한 대리만족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는 모습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선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가상에서나마 보고 싶은 것이다. 불행한 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의 책임이 결국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연민정이 계획한 악행이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은 연민정 혼자만의 욕망과 능력 때문은 아니었다. 연민정의 주변에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다가 연민정에게 약점을 잡힌 사람들, 혹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민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연민정의 악행을 실행 가능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지만, 가만히 그 내막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도 각자 나름의 고민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어 때로는 동정심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각자 나름의 고민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오늘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악행에 침묵하는 한 현실의 연민정이 정의의 심판을 받거나 최소한 현실의 장보리만이라도 행복해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 부정 선거로 당선된 나라,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할 기관이 부정 선거를 주도하는 나라, 공영 방송의 기자들이 국민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나라, 그럼에도 시청료를 올리지 않아서 공영 방송이 위기라고 국민을 협박하는 나라, 전과 14범이 대통령이었는데 재임 기간 내내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던 그의 가훈이 정직이라는 나라,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나라, 재계 순위 1위인 기업이 노조가 없는 나라, 친일파라면 쌍심지를 켜고 공분하면서도 친일파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는 나라, 3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왜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가를 명백하게 밝히자는 피해자 가족들의 가장 최소한의 요구 조차 묵살되는 나라, 이런 나라가 가능해지는 것이 과연 몇몇의 연민정 때문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이 총체적인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암담해 보이지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할 수 있다. 결코 악행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 무엇이 문제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그래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연민정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다음 회차 연속극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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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을 산악 경비중대에서 보냈던 그는 매일 해발 천미터가 넘는 산의 초소를 30분 내에 주파해야만 했고, 그 산 위에서 최소 5시간을 혼자서 멀뚱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부대원 중 많은 이들은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가운데 무릎에 물이 차올라 관절을 수술해야만 했고, 벼락을 맞고 살아남은 병사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열악하고 혹독한 군 생활을 거쳤다고 생각하는 다른 대부분의 군바리들처럼, 그가 근무했던 산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산이 철천지원수인 것처럼 산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또한 그는 군을 제대한 후에도 한동안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도 극도로 기피하여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세월은 인간의 기억을 희석시킨다. 그것은 즐거움이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고통이나 절망마저도 그 반응 강도를 서서히 낮춰준다. 군을 제대한 후 2년이 지난 어느 겨울 그는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계획한 지리산행을 동행하게 되었다. 뱀사골에서 시작하여 산 정상의 능선을 타고 노고단까지 갔다가 기나긴 내리막의 돌계단들을 걸어 내려오는 일박 이일의 여정은 그에게 산의 위대함을 순식간에 각인시켜준 경험이었다.

추위가 뼈에 스미는 날씨였음에도 산을 오르는 순간부터 몸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올라도 올라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정상에 다다른 순간, 한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하늘과 닿아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시시포스(Sisyphos : 보통 시지프스로 알려져 있는)라는 인물이 있다. 코린토스라는 나라의 못된 왕으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는데 산 정상에 커다란 바위를 굴러 올리면 그 바위가 굴러 떨어져 다시 그 바위를 굴러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이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바위를 굴러 올리는 순간에 그는 산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이른 기쁨도 잠시,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는 그 바위를 다시 굴러 올리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알베르 까뮈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무수한 고난을 거쳐 바위를 끌어 올렸는데, 그 바위가 굉음을 내며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것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시시포스는 산을 내려간다. 터덜거리며 내려가던 시시포스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까뮈는 바로 그 순간에 시시포스가 실존을 자각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려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결코 산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오른다는 사실, 올라 보기라고 해야 한다는 그 과정을 중시한 것이 허무주의라면, 까뮈의 실존주의는 어떠한 존재도 그 존재에 이유가 있다는 것, 산을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으로 완벽하게 존재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산은 오르는 이상으로 내려오는 것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한치도 다르지 않게 오름과 내림의 반복되는 작은 곡선이 하나의 커다란 오름과 내림의 큰 곡선을 그리며 마감하는 삶과 닮아 있다.

고단에서 한없이 이어진 내리막의 길은 길고도 지루하게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오르는 이상의 고난이 내림에서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떻게 내려가느냐 하는 것, 무엇을 자각하면서 내려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이후 계속되었던 지리산에 대한 동경은 이번 휴가를 지리산행으로 결심하게 하는데 아무런 주저도 없게 하였다. 아침 6시 남원행 버스에 올라, 남원에서 백무동에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백무동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만 13일 동안 하루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었고, 마지막 이틀 동안엔 태풍 올가가 기세를 떨쳐 사람들이 밖에 나올 수조차 없었다고 식당 아주머니는 말했다. 겨우 햇빛을 볼 수 있는 날 왔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면서 친절하게도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물을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가 있었지만, 산은 낯선 방문객을 쉬이 반겨하지 않았다. 험한 바윗길을 타고 오르자 곧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렸다. 태풍의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곧 확인되었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쩍쩍 갈라진 채 넘어져 있었고, 대나무도 많이 부러져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모진 시련을 견뎌왔을 나무들이었지만, 외롭게 자라있는 것 치고 성한 것이 별로 없었다. 자연의 법칙은 철저하게 독불장군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목터 산장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계획은 거기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것이었지만, 다시 태풍이 몰려온다는 산장지기들의 말에 바로 하산을 강행하였다.

산장도 하나의 봉우리였지만, 안개와 구름에 가려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휴가 내내 산장에서 발이 묶여 있고 싶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하산을 서두르다 보니 미끄러져 왼쪽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쭉 상처을 내고 말았다. 산은 조심스럽지 않은 자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에서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수고하십니다", "조심해서 올라(혹은 내려) 가십시요", "반갑습니다"라고 말한다. 등산로와는 정 반대의 하산로를 택한 탓에 산을 다 내려오자 경상도였다. 운이 좋아 진주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해남에 가기 위해서는 진주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또 갈아타야 했지만, 진주 시내에 도착하자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고 밤도 깊어 방을 잡고 짐을 풀었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계획을 바꿔 부산으로 목적지를 바꿔 광안리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태풍은 진로를 수정했는지, 바람이 약간 부는 외엔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숙소를 정해 짐을 풀고 바다를 바라보며 긴 백사장을 걸어가다가 방파제에 이르자, 황혼이 완전히 저물 때까지 방파제에 앉아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의 억지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 했는데 혼자서 갖은 부산을 떨다가는, 그래... 이제 그러는 네가 지겹고 나도 지쳤다, 그러니 이제 그만 두자라고 하는 건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 처사였다.

언제나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무성의함에 불만을 털어 놓았지만, 과연 그는 얼마나 진실했던가? 그는 과연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당당하게 그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가? 과연 그는 그러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언제나 자신 생각만 하지는 않았던가? 언제나 그의 기준과 자신의 가치 판단과 자신의 사고를 통해서 그녀를 이해한다느니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느니 하지는 않았던가?

저녁을 먹고, 비치비키니라는 천장이 높고 인테리어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법한 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비가 가끔씩 내리기도 했지만, 곧 그쳤다. 다시 백사장에 나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자동차 소리와 하늘이 꾸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파도의 포말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혀 다른 목소리가 응답했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끊었다. 어두운 바다 너머에서 건설 중인 부산의 동서를 잇는 거대한 다리의 형체가 희미하게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을 집어 삼키고 있는 인간들의 만용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리라... 아니, 벌써 치르고 있는데도 몽매한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그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그의 인내심이 부족한 탓이고 모든 것이 다 그의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생겨 먹었고, 그녀의 그런 점을 납득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설명하려 하지도 않고, 그 자체로서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인정해 주길 바라지만, 그렇다면 그의 자체로서의 존재는? 그렇다면 그는 무엇인가?

그의 존재를 무시한 채, 그녀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진실로 옳은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존재하는 것이 그렇듯이 하나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만일 두 존재가 서로에게 의지해 존재해 가기 위해서는 조금씩의 양보가 필요한 법이다. 그 양보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조차 거부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흠... 역시 자기 합리화로 치닫고 있군.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다시 서울에 온지 만 하루가 돼 가고 있다. 휴가 마지막 날인데, 언제 지리산과 광안리를 가봤냐는 듯이 종일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고 있다. 다시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참 따분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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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나의 정직한 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

나의 추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거기서 문득 느끼는 경이로움.

 

이보다 더 견고한

출발점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나 자신에서 말미암지 않고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1920년 9월 10일 메리 해스켈

 

- 칼릴 지브란과 메리 해스켈의 서간 모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중에서 -

 

본질적으로 나는 이 말을 믿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나 자신에서 출발하고 나 자신의 나약함, 모순, 부조리, 위선과 추악함을 회의함으로써 나는 나의 무지를 자각하고 그것은 나를 보다 성숙해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이 믿음으로만 끝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이 빌어먹을 사회의 부조리에 격심한 분노를 느낍니다. 허울좋은 장미빛 환상에 가려 고역스런 진실은 외면을 당하고(스스로의 진실성이 눈꼽만큼도 진실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것 또한 우스꽝스럽습니다만), 너무나도 불평등하기만한 각양각색의 삶들이 산재해 있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타인을 잘 속일 수 있느냐는 것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척도가 가늠된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건이 타인보다는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타인을 속이는 것을 배워갑니다. 때때로 절묘하게 타인을 속였다는 무용담을 들으며 경외의 감탄을 하고, 나 또한 감쪽같이 타인을 속였을 때 전신을 짜릿하게 하는 통쾌함마저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점점 내가 삶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언젠가는 그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따위 관념적인 회의를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유치한 발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나를 자각하기 위해 이런 식의 표현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또 무시무시한 공룡의 발톱에 끼어 떨어지는 찌꺼기를 받아 먹으면서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먹기 위해 서로를 음해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러는 내가 아직은 덜 궁핍했고 그래서 덜 현실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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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브와 숙명

2002년 2월 22일 오전 1시 26분 15초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에 스트로브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자신에게는 그다지 신뢰할 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이 녀석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여 한심하고 세속적인 싸구려 그림을, 예술이라는 건 몸을 치장하는 모피 코트나 거실을 우아하게 도배해 주는 장식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에게 고가에 팔아넘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몸의 표현대로라면 "고뇌와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이 희극적일 수밖에는 없는 외양을 지녔기에 비극적인" 이 녀석에게 살리에르와 같은 예술적 안목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그의 진짜 비극은 시작된다.

그에게 만일 그러한 안목이 없었다면, 죽어가는 챨즈 스트릭랜드를 살려 주고 그에게 자신의 집을 작업실로 내주고 자신의 부인을 스트릭랜드에게 빼앗기고, 마침내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서는 스트릭랜드와 자기 부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다가 사랑하는 부인의 자살과 오직 자신 밖에는 알아 볼 수 없는 스트릭랜드의 걸작 앞에서 "희극적일 수밖에는 없는 외양을 지녔기에 비극적인" 모습으로 "고뇌와 절망으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숙명이 그렇듯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녕 그런가?
정녕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숙명과도 같은 "어쩔 수 없음"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하고 말 수밖에는 없는 것인가?

아무래도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야 말 것 같다. 패배론적 숙명론자에게 들리는 음악은 Aphrodite's Child의 <Don't try to catch a river>. 그래도 유일한 위안은 음악이다. 며칠째 계속되는 불면의 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Axel Rudi Pell과 Royal Hunt, Rainbow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늘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허기가 밀려와서 꾸역꾸역 허기를 메워야 하고, 똥오줌을 싸야 한다. 존재해야 할 실존적인 이유를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던 존재에게 존재해야 할 아무런 실제적인 이유가 없어져 버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를 강요당하는 현실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나 모든 숙명이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정녕... 그런가?


잠, 환상, 두통


2002년 2월 25일 오후 8시 49분 10초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술담배로 몸을 혹사시켰으니 병이 나는 건 당연하다.
종일 신열에 들떠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담배를 피우면 증상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담배 연기가 고역스럽고 아무런 맛도 느끼질 못하면서 두통에 시달리는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는 온갖 생각들에게 니코틴 한 조각은 작은 위안이 된다.

저녁나절쯤에야 겨우 몸을 추슬러 일어나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눈은 한 자쯤 들어가 있고 얼굴 여기저기에 뻘건 반점 같은 것이 돋아나 있으며 일주일을 깎지 않은 수염은 몰골을 더욱 흉측하게 한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밥을 먹고 약을 먹는다.
약기운에 취해 다시 잠을 청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던 정신은 이내 무한한 시공 속에 내팽개쳐져서 한없는 빛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렇게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간구했건만, 다시 눈을 뜨니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계속 더 아프기로 작정한다. 지금의 나에게 출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탓에 허리가 아플 지경이 되면 일어나 부들거리는 손에 니코틴 한 조각을 끼워서 불을 붙인다. 여전히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다. 두통약을 연식 먹어대지만, 깨질듯이 아픈 머리는 좀체 가라않질 않는다.

점점 가슴까지 답답해져 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대로 딱 멈치어 버리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약을 먹고 약기운에 의지해 잠이라도 청해보기로 한다.


윤동주를 모독하기 위하여

2002년 3월 1일 오전 4시 20분 59초

   새벽이 시작되는 깊은 밤 한가운데 앉아 하늘을 보니
  
오십여년 전에도 반짝였을 별들이
  
오늘도 '바람에 스치'우다가 
   '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는지 
   '
나를 부'른다. 
   '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며
  
깊은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육신은
  
싸늘한 바람 속에서 떨고 있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불쌍한 프로메테우스는 
   '
불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였지만,
  
나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도 아닌데 
   '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을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는 왜 이 밤의 별들을 
   '
아무 걱정도 없이 헤일 수' 없는 것일까? 
   '나이보다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란
   '슬퍼하는 자에겐 복이 있'다는 것뿐이고,
   바닥을 알 수 없이 공허한 이 가슴에는 
   '
꽃처럼 피어나는 피'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해지기라도 할까?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진실로,
  
진실로
   '
부끄러운 일이다.'
 

고뇌

2002년 3월 7일 오전 1시 34분 40초

임의로 중단하고자 하는 것이 중단되지 않고 진행되는 어려운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지구 역시 자전과 공전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 두통과 몸살이 육신에서 조금씩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존재해야 할 아무런 실제적인 이유가 없어져 버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를 강요당하기 시작한지 벌써 2주가 훨씬 넘어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삶들과 부대껴야만 하는 순간순간을 무감각하게 흘려보내면 불면의 밤은 여지없이 멈추지 않고 찾아온다.

봄가뭄이 오래 지속된 탁하고 목마른 대기에 비가 내린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지난겨울과 달리 밋밋하게 끝나가고 있는 이번 겨울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비일까 싶었는데, 비가 그친 하늘에선 영원한 겨울을 준비해야할 나를 위함인지 황량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침에는 싸리눈과 함께 떨어지는 비를 굳이 피하지 않았고 저녁에는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를 정면으로 맞이하였더니 다시 가벼운 한기를 느낀다.
몸을 녹일 요량으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려 얼굴을 적시고 온 몸을 적시는 것을 고개를 숙인 채 바라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의 감촉이 온 몸에 스며드는 순간,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감상의 메아리는 한 번 시작된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한다. 마침내 그 자리에 덜썩 주저앉아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온 몸으로 받으며 오래도록 좁은 어깨를 들썩인다. 


   나의 침묵이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황량하고,

   나의 육신이
   분노한 사티로스의 망령에 쫓기고,

   나의 관념이
   음침한 타락의 발걸음으로 경쾌하고,

   내 대뇌가
   질척이는 진창에 뇌수를 흘릴 때,

   나의 고뇌는,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나의 이 고뇌는
   황홀한 쾌감으로 격렬한 파동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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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니던 중에 집을 헐고 새로 지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집 새로 짓는다고 옆집에서 딴지 거는 것 만큼 못된 이웃 있겠냐시던 옆집 아줌마는 집을 헐자마자 옆집 공사로 지반에 균열이 갔네, 벽에 금이 갔네, 민원을 제기했고, 그 바람에 한 2년 정도를 학교 기숙사며 친척집이며 단칸 월세방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결국 그때의 땅에 집을 짓지 못하고 10년 이상 살던 신림동을 떠나 사당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추상같은 마눌님의 위세에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예전에 나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 오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떠돌아 다니던 그 2년 동안 여러 친구의 집을 전전했는데,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9동(지금은 대학동으로 지명이 바뀌었지만)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기생했었다. 친구 집에서 자게 되면 당연히 잠만 달랑 자게 되지 않는다. 맥주라도 사다가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따라 술이 좀 잘 넘어가서 있는 맥주를 다 마시고 술을 더 사기 위해 친구 집을 나서게 됐다. 나온 김에 비됴라도 한 편 빌릴려구 비됴가게로 가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졸라 화끈한 액숑 영화 하나 하구 졸라 쌔끈한 빠굴 무비 하나를 빌려야 할텐데 몬 영화를 빌려야 하느냐로 고민 때리며 걷고 있는 우리 앞에서 어떤 여자애 하나와 남자애 둘이 뛰어 오고 있었고, 그 뒤로 방범 아저씨 둘이 쫓아오고 있었다.

여자애는 거의 고삐리거나 막 졸업한 것처럼 보였고, 남자애 둘은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녀석들이었다. 여자애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뛰다가 우리 바로 앞에서 넘어졌는데, 50대 후반은 족히 되었음직한 방범 아저씨들이 헉헉거리며 뛰어 와서는 여자애를 붙잡았다.

방범 아저씨 1 : 아니, 왜 멀쩡한 빽미러를 부수고 도망 가?

방범 아저씨 2 : 도망간 남자애들, 친구들이지?
여자애 : 아이- 씨- 놔요! 존나 재수없네...
방범 아저씨 1 : 뭐? 아니, 요 쪼그만 게 말하는 거 좀 보게.

그때 먼저 도망갔던 남자애 두 넘이 다시 돌아왔다.

남자애 1 : 아저씨! 왜 남의 여자 손을 만지고 그래요?
남자애 2 : 야, 저치들이 너 때렸냐? 

도망갔던 넘들이 돌아와서 잘 됐다고 잡으려 했던 방범 아저씨들은 어이가 없어졌다. 어쨌거나 파출소로 가자고 두 넘을 붙잡아서 데려 가려는데, 두 넘은 우리가 왜 가냐고 버팅기고 하는 사이 여자애는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 버렸다.

남자애 1 :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래?
남자애 2 : 당신들 혼 좀 나 볼래?

말투가 조금씩 거칠어지던 이 넘들 입에서 욕설까지 나왔다.

남자애 1 : 시바! 조또 아닌 것들이 피곤하게 하네, 정말...

근데 자신의 자식뻘 밖에 안 돼 보이는 새파란 넘들의 기고만장한 큰소리를 들으면서 방범 아저씨들은 오히려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방범 아저씨 1 : 그러게 왜 아무 죄도 없는 빽미러를 때려 부수고 그래?
남자애 2 : 시바!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증거 있어? 증인 있냐구? 
방범 아저씨 2 : 여자애가 그러는 건 내가 직접 봤어. 너희들 그 여자애하고 친구지?
남자애 1 : 아- 우리는 모른데도 그러네. 이거 안 놔? 존 말 할 때 이거 놔!!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도저히 더이상 눈 뜨고 못 봐 줄 지경이었다. 당시 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세상 무서븐 줄은 모르고 지 잘난 줄만 알고 날뛰던 때라 겁대가리 짱박았던 모양이었다. --;;

나 : 뭐, 요따우 개 씨박 쉐히들이 다 있어? 너 일루 와!! 요 씹새야.

그러고는 남자애 한 넘의 멱살을 움켜쥐고 면상에 주먹을 막 날리려는데 방범 아저씨가 결사적으로 나를 막아섰다.

나 : 잠깐만 놔 주세요, 아저씨. 저 조까튼 씹쉐히들이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눈깔을 좀 뜨게 해 줘야겠어요.
방범 아저씨 1 : 학생, 왜 그래? 학생이 그러면 우리가 더 곤란해져.

그 말을 듣자, 어디서 산적같이 생긴 떨거지가 나타나서 깽판을 치자 잠깐 쫄았던 남자애들이 그거 좋은 수다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모양이었다.

남자애 2 : 당신은 뭐야? 방범하구 짜구 그러는 거지? 
남자애 1 : 어디 돈 많으면 때려 봐! 때려 봐!

그러면서도 방범 아저씨들 뒤로 숨는 꼬라지를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서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나 : 아저씨, 애네들 우리가 델구 갈게요. 우리가 쫌만 델구 있다가 파출소로 보내 줄테니 아저씨들 먼저 가 계세요.

흥분해서 펄쩔펄쩍 뛰어 오르는 나를 친구와 방범 아저씨들이 간신히 말렸고, 그 넘들이 방범 아저씨들의 호위를 받으며 파출소로 가는 걸 쫓아갔다가 방범 아저씨들이 따라 오면 안 된다는 간절한 애원에 나는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서 길가에서 악을 바락바락 질러댔다.

나 : 뭐, 이런 조까튼 세상이 다 있냐? 세상에 자기 아버지뻘은 되는 아저씨한테 별 조까튼 애숭이 씹쉐히가 욕지거리를 해 대는데 지나가는 그 많은 쉐히들 중에서 한 넘도 그 애숭이한테 한마디 하는 넘이 없냐? 그렇게 지 몸 하나 존나 잘 건사해서 고시공부만 존나 열쉼히 해라. 그렇게 판검사 돼면 울나라 존나 좋은 나라 돼겠다, 씨벌. 캬- 악- 퉤-



여전히 빡쎄게 공부만 하고 계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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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철 묵시록

일상2010. 11. 6. 02:24

2001년 8월 23일 목요일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또 잠을 설쳤다.

종일 더위에 지친 채 수면 부족으로 허덕이다가도 막상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잡아먹을 듯 활개를 치던 그 많은 잠귀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두어시간을 뒤치락거리면서 오지 않는 잠을 불러 내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겨우 잠에 빠져 들었다 싶었는데 어느새 아침은 악귀같이 내 뺨을 후려치고 햇살은 똥꼬를 찔러댄다. 가사상태에서 출근을 하고 그렇게 또 하루는 시작된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터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거의 습관에 가까와져 버렸다. 그 자료들 중 90% 이상은 중복된 것이고, 그 중에서 또 90% 이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뿐이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집요하게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지 불분명해져 버렸다.
처음 자료들을 모으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에 대해서 뭔가를 끄적여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꼭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지도 않다.

내 인생에 있어서 <지옥의 묵시록>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이 기회에 규명해
보기 위해서? 가슴 떨리게 고대하고 있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관람이 좀 더 흥미진진해지게 하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처럼 집요하게 하는 것일까?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덥다.
지하철 냉방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코를 간지럽힐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면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열기는 지하철 천장에서 뿜어주는 냉기를 가볍게 제압해 버린다.

누구의 작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지
않나 싶다),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의 고충을 적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감옥에서의 겨울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춥고 고달프지만, 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건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의 온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감옥에서의 여름 역시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훌쩍 뛰어 넘도록 무덥고
고통스러운데, 특히 밤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열기는 그 고통을 극대화시킨다고 한다.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릴 때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참을 수 없는 열기는 증오를 뛰어 넘어 곧장 살의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꼼짝도 할 수 없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디에도 시선둘 곳 없는 지옥철 안에 갇혀 있는 내 바로 앞에서 엄청난 열기를 뿜어대는 사람이 지독한 몸냄새까지 동반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느낀다.
살의... 말이다.


2001년 8월 24일 금요일

LOST IN A ROMAN...WILDERNESS OF PAIN
AND ALL THE CHILDREN ARE INSANE
ALL THE CHILDREN ARE INSANE
WAITING FOR THE SUMMER RAIN, YEAH

하나씩 접근해 가기로 하자.

묵시록(The Apocalypse)이란 여러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비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문학이라고 한다. <바룩 묵시록> <제4 에즈라서> <요한 계시록>이 1세기 말의 3대 묵시록으로 일컬어지는데 묵시록이 계시록(The Revelation)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묵시록의 내용은 주로 예언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아마겟돈이니 예수 재림이니 최후의 심판 등을
예언하고 있는 <요한 계시록>을 <요한 묵시록>이라고도 한다. 요컨대 묵시록이란 그리스도계의 계시 문학서인 셈이다. 그런데 언어의 미묘한 질감적 차이에 의해서 계시록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세계관이 느껴지는 반면, 묵시록이라고 하면 다분히 부정적인 세계관이 느껴진다.

<Apocalypse Now>를 직역하면 '현대 묵시록' 정도 될 것이다.
영어의 The Apocalypse와 The Revelation의 어감적인 느낌의 차이 역시 우리의 묵시록과 계시록의 차이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코폴라가 '현대 계시록'이 아닌 '현대 묵시록'으로 타이틀을 정한 것은 침울하고 몽환적인 화면과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메세지가 묵시록이라는 단어의 질감과(최소한 우리의 언어적 질감과는) 잘 어우러져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나라에 개봉하면서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한 건,
'지옥'이라는 막강한 단어를 동원해서 묵시록을 더욱 장중하고 비장미 넘치게 만들긴 했지만, 영화의 배경인 베트남 전쟁이라는 '지옥'의 묵시록으로 의미가 축소된 감이 없지 않다. '현대 묵시록'이라는 원제가 내포하는 것은 그 묵시록의 배경이 베트남 전쟁으로 은유되는 현대 사회 전체이며, 전쟁을 통한 인간의 광기는 현대 사회에서 전쟁하듯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광기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옥의 묵시록>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때의(지금이라고 해서 별반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없는 번역이 타이틀을 바꾸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는 두 편짜리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그때의 번역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다. Kilgore를 '킬고'로 Clean을 '클랜'으로 표기한 건 양반이고, Wagner를 '와그너'라고 해 놓았으니 좀 더 심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대사를 어떻게 번역했을지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덥다.
그리고 지하철은 여전히 짜증스럽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은 생활이라는 전쟁에 쫓겨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외양을 하고 있었고 자리에 앉아마자 졸기 시작했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치일 만큼는 아니었지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려면 난해한 몸 비틀기와 사팔뜨기를 해야만 가능할 정도이기에 지하철 안은 예의 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역에 정차하고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또 사람들이 올라 탄다.
갑자기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물결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내 건너편 옆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성큼 나타나셨다. 얼른 자리를 차고 일어나려는 찰나 내 건너편 옆에 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엉거주춤 나는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상당히 빠른 반응이었지만 자리를 양보해 주려는 사람이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그 할아버지는 '에헴-' 큰기침을 한 번 하신다. 얼굴에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역력하시다. 약주도 한 잔 하신 듯한 얼굴이다.

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불그스름한 얼굴을 두리번 거리시더니 바로 옆에서 졸고
있는 그 샐러리맨을 바라보면서 불쾌해 하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신다. 몸을 약간 삐딱하니 하고 앉아서 연신 헛기침을 해 대는 것이 왜 젊은 것이 노약자석에 앉아서 졸고 있냐는 질책이다.

그래도 지독한 피로에 지쳐 있는지 그 샐러리맨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사방을 휘~ 휘~ 둘러 보시던 할아버지는 마침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고서는 출입문 앞에 서 있는 또다른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끌고 오시려 한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것들은 노인 공경할 줄도 모른다는 요지의 고함을 고래 고래 질러대신다.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눈을 뜬 샐러리맨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역정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온 다른 할아버지가 한사코 그 샐러리맨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아 그 샐러리맨은 다시 원래의 자리에 앉는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다음 역에서 내리기 위해 출입문 앞에까지 가 있다가 이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오신 것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을 바라 보면서 나는 문득 JP가 생각이 난다.
오장섭 건교부 장관이 짤리면 결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 (혹자는 이를 '몽니'라는 천박한 용어로 부르더라만)를 내 보이던 그. 그러나 밀려드는 비난 여론를 감당하기 어려워 오장섭 건교부 장관이 경질되고, 건교부와 관련된 전문성에서는 토지공사 사장으로 재직했던 1년 6개월이나 되는 유사경력이 전부이고, JP의 최측근이라는 거 빼고도 도덕성에 있어서 흠잡힐 만한 거 투성이인 김용채 토지공사 사장이 후임으로 임명되자 희희락락해 하던 그.

8.15 민족통일대축전의 방북단 사건으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도마 위에 오르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DJ가 임장관을 싸고 돌지 말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자민련의 수장인 JP.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기득권은 절대로 보호받아야 하고 타인의 실수는 절대로 성토되어져야만 한다는 이 땅의 모든 수구 권력들이 오버랩된다.


2001년 8월 28일 화요일

IT HURTS TO SET YOU FREE
BUT YOU'LL NEVER FOLLOW ME
THE END OF LAUGHTER AND SOFT LIES
THE END OF NIGHTS WE TRRIED TO DIE

THIS IS THE END

마침내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했다. 전날 두어시간만 자고 아침부터 종일 운전하면서 돌아다닌 탓에 몸은 납처럼 무겁고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였지만, 주저 앉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세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자니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루드비코 요법'이라는 세뇌 교육을 받았던 알렉스가 떠올랐다.

물론 자발성의 상이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혹시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결국 내 인식의 한계를 스스로 국한시켜 놓은 채 이미 정해져 있는 완고한 결론으로 모든 것을 아전인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올바른 영화보기의 자세에 있어서, 다른 모든 예술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예술도 그것이 창작자의 의도 그대로 대중에게 인식될 수는 없으며 대중은 각각의 개인적 경험과 환경에 의해서 똑같은 예술 작품에서 전혀 상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술에 탐닉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비록 내가 자신의 독특한 경험으로 인해서 <지옥의 묵시록>을 신성화하였고,
그것이 내 인생의 일정 부분에 지울 수 없는 무게를 달아 맸다고 해서 삭제된 분량이 복원되고 새로이 편집되어 '돌아온' <지옥의 묵시록> 마저도 똑같은 결론으로 인식하도록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하기 이전에 이미 어떠한 결론, '가슴 떨리게 고대하는 감동'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집요하게 잡아 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픈닝 시퀀스는 전율스러웠다.
아마도 도어즈의 <The end>가 아니었다면 오픈닝 시퀀스가 그토록이나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었을까마는 윌라드 대위 역의 마틴 쉰은 인간의 본질적 고독 속에서 드러나는 극렬한 광기를 아무리 찬양해도 부족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해냈다.

........

아무래도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블랙키 로울리스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이끄는 밴드 W.A.S.P.는
<지옥의 묵시록> 마지막 시퀀스에서 영감을 얻어 앨범 <K.F.D.>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 앨범을 설명하는 자료에는 커츠 대령이 읊조리며 독백하듯 윌라드 대위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인 부분에서 T.S. 엘리엇의 <The hollow men>의 일부가 인용되었다고 한다.
엘이엇이었나? 쉴러가 아니고?

T.S. 엘리엇의 <The hollow men>을 찾아서 읽어 보았고,
<지옥의 묵시록>의 영문 시나리오를 훑어 보았지만 밋밋한 영어 실력 탓인지, 죤 밀리어스 원작 시나리오가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상당한 부분에서 전혀 다른 탓인지, 엘리엇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로를 헤매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 시퀀스에서 소가 도살되는 장면과 커츠 대령이 살해 당하는 장면의 교차 편집이 의미하는 바가 소의 순종적이며 비극적이고 희생적인 운명과 커츠 대령의 운명의 유사성을 상징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아마도 그것은 운명이라는 굴레, 헤어나올 수 없는 그 공포를 스스로는 종결 짓지 
못하는 운명의 유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가 도살되는 제식은 열반으로 향한 향연이지 않았을까?
거의 3주째 지옥이라는 단어와 묵시록이라는 단어의 중간 쯤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는 내 정신의 운명은 어떤 식으로 종결짓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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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엔 캐감동었었지..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연말만 되면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를 보내는 행사에 고등학교 때까지 동원되었었다. 내 또래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싶은데, 초등학교 때 나는 북한군은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고 김일성은 엄청나게 덩치가 큰 돼지의 형상으로 묘사된 <똘이장군>이라는 애니메이션에 감동을 먹었고 실제로도 북한괴로도당과 김일성의 무시무시한 마수가 언제 어느때라도 우리에게 뻗쳐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약했던(-,.-;) 나는 <똘이장군>에 등장한 늑대 형상의
북한군이 쳐들어와서 허겁지겁 도망다니는 꿈까지 꿀 지경이었다. 그래서 국군 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에서 나는, 언제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시는 아저씨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는 요지의 내용을 쓰면서 똥말똥말한 눈을 빤딱이며 스스로에게 뿌듯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너무나도 편협한 파시즘에 세뇌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은 국군 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에 너도 나도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회의하게 하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는 국군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는 것이 전혀 쓸모가 없다거나 위문 편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왜 위문 편지를 매년 연말만 되면 일체의 예외도 없이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말에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된 위문편지에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기술하였고, 이러한 위문 편지에서 과연 국군 장병 아저씨는 얼마나 '위문'을 받는지 궁금하다는 요지의 내용을 쓰게 되었다. 위문편지를 보낸 다음날, 종례가 끝난 후 담생이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귀가하기 전에 교무실에 잠깐 들를 것을 명령하였다. 

--재연한 실제 상황--

담생 : ...이상 종례를 마친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 보며) 백운수!
나 : (화들짝 놀라며) 에... 예?
담생 : (단호하고 강경하며 냉정하게) 따라 왓!
나 : --;;;;;;;;;;;
(주위에 있던 반 친구들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고등학교 1학년때의 담생은 일명 PS(사이코 새디스트)로 불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는데, 여름과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1년 내내 허벅지에 멍자국이 지워질 날이 없을 정도로 우리반 전체에게 현란한 빳따를 휘둘러댔기에 될 수 있는 한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최선책이었다.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어서 부언하자면, 담생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바로 잡고자 빳따를 휘두르게 되면 엎드려 뻗쳐 자세에서 허벅지 부분을 기다란 대걸레 자루로 두 대씩 때리게 되는데, 일단 맞으면 멍자국이 퍼렇게 생겨나고 그 멍자국은 최소한 일주일 이상 지속되며,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담생의 예리한 지도 편달 레이다에 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담생의 빳따 휘두르기는 대부분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간혹 담생의 애정지심을 너무나도 심각하게 촉발시킨 사람은 따로 담생에게 불리어져 가서 어떠한 사랑을 받는지 전설로만 전해지는 탓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음날 도저히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이 피폐해진 모습으로  등교한 그 사람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담생에게 호명되어 교무실로 끌려가게 되었으니, 주위의
친구들은 '넌 이제 조뙜다.'라는 즉각적인 부러움의 시선을 던진 것이다.-.,-; 그렇다. 몬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나는 조뙌 것이다. 담생의 철철 넘쳐나는 사랑이 나에게 쏟아질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위문편지조차 검열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죽지 두번 죽을까? 미지의 공포에 똥꼬를 움찔거리면서도, 아무리 잔머릴 굴려 봐도 그닥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르자 짐짓 당당한 척 교무실로 들어서서 담생의 앞에 마주 섰다.

담생은 그 전날 내가 써서 제출한 위문편지를 손에 들고는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이 눈을 번득였다. 나는 위문 편지가 검열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첨 알았다. 당시에 내가 담생에게 받은 사랑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상상에 맡기겠다.

어제 민방위 교육을 받았다.
8년간의 예비군 훈련이 끝나면 봄과 가을 각 4시간씩 4년 동안 받아야 하는 이 민방위 교육을 받으면서 위문 편지와 같은 획일적이며 그다지 능률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행사가 생각났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도 나는 항상 그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아무 쓸모도 없이 낭비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예비군 훈련에 동원되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향방 훈련이라고 불리는 것은 저녁에 동네 초등학교 같은 곳에 모여서 노리쇠도 후퇴되지 않는 총이 수두룩한 총을 지급받고는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데, 그런 훈련을 통해서 군인 정신이 함양되리라 생각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공연히 동네 사람들에게 위화감이나 조성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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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마태복음 8:14-15


초등학교 무렵 계란을 준다고 해서 두어번 다녀본 것과,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과 어떻게든 친해 보려고 서너번 다녀본 것 외엔... 이런, 된장... 생각해 보니 쵸코파이를 먹을 수 있고 사역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군생활 중에도 몇 번 다녔고, 대학교가 기독교계였기에 채플을 패스하지 않고는 졸업할 수 없는 절대조건 앞에서 깨끗이 고개숙여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 적도 있으니 기독교와의 인연도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날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가치체계가 그렇게 형성돼
버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철저한 무신론자이다. 물론 인간의 정신세계는 너무나도 오묘하고 방대하여 간혹 과학적이거나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현상,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무한한 정신력에 의한 것이며, 그 정신의 힘은 상상하기 어려운 가능성까지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는 것은 믿는다.

아마도 내가 무신론자인 것은 그 절대적인 정신력의 세계를 믿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안에는 이미 나의 모든 것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정신이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고 믿지 않으면 나타나지도 않는 어떤 존재가 저 하늘 위 어딘가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내 정신세계 위에 군림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운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모든 신-하나님이든 부처든 알라든-이라는 건 그 정신력의 변형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람들 각자는 내재되어 있는 절대적 정신세계가 있으나, 그것이 절대적이라는 자각을 하기 전에 정신세계 속에 어떤 이유나 경로나 형태로든 침투한 신들이, 내재된 정신력이 마치 자신들인 양 들어앉아 버리게 됨으로써 종교라 불리우는 정신세계들의 집단에 편입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건 순전히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이 없는 사람과 남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을 결코 받아 들일 수 없었던 아내는, 비록 지금 신앙이 없을지라도 신앙을 갖으려는 최소한의 노력-교회를 다니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남자와의 사이가 깊어지는 것을 괴로워하였고 급기야 그 남자의 사랑을 회의하게 되었다.

이별을 통보하는 아내의 청천벽력에 화들짝 놀란 나는 바로 그날부터 교회에 나가서 신앙을 갖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아내의 회의를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내 사랑의 깊이를 의심하는 아내의 사랑에 대한 잣대를,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일주일에 한번쯤 좋은 말씀도 듣고 일주일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고, 내 안의 정신은 내가 교회에 나간다고 지옥불에 떨어뜨린다는 협박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내의 뜻을 존중해 주는 것도-비록 표면적일지라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이 아내의 목적이라는 데 있었다.
또한 비록 노력은 해 보겠으나, 아무래도 내가 신앙을 갖는다는 건, 혹시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어떤 불가해한 상황에 내가 직면하여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의지해서라도 그 상황을 견뎌내 보려는 상황에 처해지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과 실천할 수도 없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7년을 꾸준히 교회에 다녔고,
만일 정말로 하나님이 있다면 매우 죄송스럽지만, 거짓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끝에 마침내 아내와 결혼하여 다시 1년여를 교회에 다니고 있다.아내가 교회에서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결혼으로 인해 상당한 거리가 되었음에도 기존에 다니던 교회를 계속 다녔으나, 거리상의 이유 이외에 몇가지 이유로 인해 최근에 아내와 함께 집근처 교회에 등록하여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다니게 된 교회에서 지난주 설교의 주제는 '열병을 치유하는 예수님'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안수하여 치유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을 받아들여 믿고 의지하자 열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역사한 것과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에 복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목사의 설교는 이제 그 열병이라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로 이어진다.
먼저 교육의 열병을 이야기하는 중에 목사는 자신의 아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였다. 목사는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우산 아래에서 나태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 아들은 목사의 뜻에 부응하여 변두리 작은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며 중증환자의 간병인으로 1년여를 봉사하였다고 한다.

목사는 비록 자신의 교육철학에 따라 자신의 아들을 멀리하였으나, 자신의 아들이 중증환자의 똥오줌을
받아내고 그들을 목욕시키는 모습을 '아버지의 눈'으로 보면서 솔직하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목사의 아들은 하버드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자기소개에 기재하였는데, 하버드대학에서는 다른 자격은 볼 것도 없이 그 아들이 인류를 위해 공헌할만한 사람이기에 합격시켜 주었다고 한다.

과연 그것만으로 하버드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현재 우리의 교육이 너무나도 잘못된 열병에 걸려 있으며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거북했던 점까지 솔직하게 말한 목사의 말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기에 목사도, 그 아들도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목사는 정치와 사회의 열병 역시 기독교인들이 솔선해서 치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과거 많은 기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열병을 오히려 부추긴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 예로 목사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착한 여공들에게 공연한 바람을 넣어 노조를 만들게 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된겁니다."

그 훌륭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 목사가,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목사가, 그래서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버드대학에서도 합격시켜준 아들을 둔 목사가 우리 사회의 열병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교육적 진보성과는 전혀 상반된 보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긴 해방후 잘못 맞춘 첫 단추로 인해 수많은 진실들이 묻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받았음에도
아직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나라에서, 경제만 살린다면-과연 그 경제가 죽긴 죽었던 건지 잘 모르겠으나- 사기꾼이든 전과자든 거짓말쟁이든, 이미 오래전에 그 경제를 죽여 놓았던 일당들이든 상관없다는 나라에서, 온전한 가치체계가 성립된다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이비 교인이긴 해도, 나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예수가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빈민, 노동자, 여성, 어린이, 장애인, 병자, 동성애자 등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임하여 그들의 삶과 함께 함으로써 사후 가장 높은 곳에서 추앙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그 예수의 삶을 기록한 것이며, 자신이 스스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비록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해도 예수의 삶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를 믿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이 교통하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부조리를 온몸으로 부딪쳐 깨뜨리려는 책무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예수가 자신의 몸을 던져 전파하려던 사랑이 아니었을까?
예수가 지금 치유해야 할 우리의 열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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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하나의 문장이라도 쓰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단 나으리라 생각해서 기록을 시작해 보려 한다.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다. 그것들을 풀어내려 해 보지만, 매번 다른 무수한 생각들에게 막힌다.  
끊임없이 읽고 또 읽다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결국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조금쯤 쉬워지지 않을까 싶었으나 읽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쓰는 것이 쉬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짧은 글이라도, 하나의 문장이라도 끊임없이 써 나갈 때에야 비로소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부터라도 이렇게 첫발을 내딛여 본다.

"지금까지 씌어진 모든 글 중에, 작가가 자신의 피로 쓴 글만 나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피로 쓴 글, 그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게 될 것이다."  
                                                                 -- F.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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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소바

일상2009. 8. 14. 19:08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식당에서 메밀소바를 주문해 놓고 멀뚱하니 앉아 있다. 한참 쏟아붓던 비가 멈추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려는지 어디선가 매미가 큰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조바심치며 허둥지둥 오전을 보냈지만, 어떠한 생산적인 결과에도 그 결과에 이를만한 일말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 채 때가 되어 끼니를 때우려 식당 의자에 앉아 메밀소바를 기다리며 멍청한 시선을 부정확한 어딘가에 보내고 있다.

멍청한 시선을 받은 부정확한 어딘가는 출입문이었는데, 딸랑이는 소리를 내며 출입문이 열리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20년은 족히 된 듯한 빨간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반팔티를 입었는데, 자세히 보니 반팔티 안에 반팔티를 하나 더 입고 있다. 오래도록 깎지 않은 수염과 멀리서도 술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발그레한 얼굴을 한 그 남자는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 와 식당 안을 둘러보고 있다.

마침 빈자리가 없던 식당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리는 멍청한 시선을 부정확한 어딘가에 보내며 멀뚱하니 앉아 있던 사내의 앞자리뿐이다. 그 사내는 고개를 돌려 바삐 움직이는 종업원들을 바라보다가 혹여 다른 빈자리가 없는지 식당을 둘러본다. 그러나 빨간색 츄리닝 바지의 남자는 사내의 앞자리에 이르러 아무런 양해의 구함도 없이 슬그머니 앉아 버린다.

종업원이 그 남자에게 물컵과 함께 메뉴판을 가져다주자, 메뉴판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는 남자의 모습을 사내는 힐끔거리며 바라본다. 길게 자란 손톱은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고 넘어져서 긁힌 듯한 상처로 보이는 빨간색 자국이 이마에서 왼쪽뺨 위까지 길게 그어져 있다.

마침내 무언가를 정한 듯 남자는 고개를 들어 종업원을 바라보았고, 주문하시겠느냐는 종업원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어딘가를 가리킨다. 남자가 가리킨 것은 즉석떡볶이를 주문하면서 첨가하는 우동사리였다. 종업원이 우동사리만은 주문할 수 없다고 하자, 남자는 라면사리를 달라고 한다.

종업원은 사리는 떡볶이를 주문해야만 같이 주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남자는 그렇다면 천원짜리 음식은 없냐고 묻는다. 천원짜리 음식은 없다는 종업원의 말에 남자는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그러는 동안 힐끔거리며 남자를 보던 사내에게 주문한 메밀소바가 내어져 온다.

사내는 남자에게 애써 무관심한 듯 시선을 떨구고 메밀소바를 먹기 시작한다.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는 사내에게 그건 얼마냐고 묻는다. 사내가 4천원이라고 답하자 남자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쉬며 다시 메뉴판 탐색을 시작한다.

문득 사내는 자신이 계산할 터이니 메밀소바를 드시고 싶다면 드시라고 남자에게 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누구를 동정하는 것이냐는 카랑한 외침이 사내의 귓가를 때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내는 남자와 동석하는 것 자체도 꺼려했으면서 새삼스레 무슨 동정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게다가 그 남자가 과연 사내의 값싼 동정을 기분나빠하지 않을지도 의문이다.

사내는 다시 고개를 박고 메밀소바를 후룩거리며 먹는다. 남자는 결국 종업원에게 김밥을 주문하였고, 종업원은 2천3백원 선불이라고 한다. 이 식당은 원래가 선불제로 운영되고 있다. 남자는 빨간색 츄리닝 바지에서 지갑을 꺼내 5천원짜리 지폐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메밀소바를 먹는 데 열중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내는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힐끔거리다가 근처에 5천원짜리 메밀소바 전문점에 가지 않고 이 식당에 들러 4천원짜리 메밀소바를 주문한 자신을 생각해 낸다. 가벼운 냉소가 사내의 입가에 스민다.
삶이란 이다지도 버거운 것이라는 자조의 냉소...

사내가 메밀소바를 다 먹고 일어설 즈음에 남자에게 2천3백원짜리 김밥이 내어져 온다. 남자는 김밥 위에 고춧가루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냥 살짝 덧입혀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김밥이 빨간색 고춧가루에 거의 가려질 정도로 수북이 뿌리고 있다. 사내는 남자가 그 김밥을 먹는지 어떤지는 보지 않고 식당문을 나선다.

갖가지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사내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이내 걸려오는 전화들과 처리해야 할 일들에 묻혀 생각들은 다시 미세한 파편이 되어 사라져 간다.
무덥고 찌는 듯한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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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행복한가

일상2009. 5. 28. 19:00



노무현 대통령님.

비루하고 넌더리나는 일상중 어느날 아침 당신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실인지 잠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한참동안  TV 화면을 들여다 보다가
"개새끼들... 개새끼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 만들어진 정태춘의 이 노래가
오늘 여기에서 여전히
가슴 속에 켜켜히 쌓이는 울분과 회한과 고통과 슬픔과 함께 갈무리됩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요.


그대, 행복한가   

                                      정태춘 작사/작곡

 
그대, 행복한가
스포츠 신문의 뉴스를 보며
시국을 논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어린이 유괴 살해 기사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보수 일간지 사설을 보며
정치적으로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점심 굶는 어린애들 얘기는 있지, 있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 애들을 굶기고 죽이는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시장 개방, 자유 경제, 수입 식품에
입맛 돋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칼로리와 땀 냄새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주한 미군 기동 훈련과 핵무기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평화와 인도주의의 구호는 있지, 있구 말구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희생양이며 표적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거듭나는 공화국마다
그 새 깃발을 쫓아 행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민족과 역사의 거창한 개념은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막강한 공권력과 군사력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보호하고 지키려는
그 무엇은 있지, 그 무엇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대상이며 주인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끊임없이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매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 그들을 가두는 법전과 감옥이 있지.
법전과 감옥이

그대, 알고 있나
노동하는 부모 밑에 노동자로 또 태어나는
저 아이들, 아이들
그래, 저들은 결국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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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일상2008. 4. 21. 02:20


시집간지 일주일만에 전쟁이 터지자, 여자의 남편은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전사 소식이 들려왔고, 눈물과 한숨이 채 그치지도 전에 시부모는 여자를 쫓아보내듯 친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청상에 과부살이로 늙느니 살아야 할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달래서 보낸 것이지만, 진정으로 며느리를 위한 것인지 팔자 사나운 서방 잡아먹은 년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여자를 친정의 어느 누구도 반겨 맞아 주지 않았고, 비난과 경멸의 냉담한 눈초리로 쏘아보는 동네사람들의 시선이 여자의 바깥출입조차 가로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인아닌 죄인이 된 여자가 불면의 밤을 지새다가 설핏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캄캄한 속에서 자신의 양손과 발이 결박당한 채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어딘가로 들려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당도한 곳에서 여자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여자는 형식적이나마 꾸며논 신방에서 소리지르지 않을 것을 재차 다짐받고 재갈을 푸는 남자를 보면서 이것이 그저 숙명이려니 체념하고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남자의 숙명도 기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일제말 일본군에 끌려가 평생 다리를 절게되는 부상을 당하였고, 병약한 색시는 두 번의 사산을 경험한 후 결국 미쳐서 죽고 말았습니다.

여자를 새색시로 맞이한 남자는 죽은 색시의 친정으로 여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동네에서 남자는 고래심줄보다 질긴 사위였고, 장모는 새색시를 데리고 오는 남자를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해 주었습니다. 남자의 장모는 여자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로 그녀의 짐심어린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그순간 여자는 이분은 내가 평생 모셔야 할 내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자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내 고모가 되었습니다.

그 후 고모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할머니를 모셨고, 50여년간 2남 4녀의 맏이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였습니다. 3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에 병명도 모르는 병에 걸려 대대적인 수술을 하였으나, 끝내 의사들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내몰린 아버지를(당시에는 거의 죽음에 이른 사람들은 병원에서도 송장치우기 싫다며 쫓아냈다고 하더군요. 물론 대부분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이었겠지만요.) 병원 근처 여관방에 누이고 어머니와 함께 한달여를 잠 한숨 제대로 못자고 간호한 고모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한 탓인지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소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즐겼던 고모는, 평생 농사일로 잔뼈가 굵어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사철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성품이 온유하고 낙천적인 고모에게 평생에 단 하나 골치거리는 네 명의 딸 뒤에 얻은 외아들이었습니다. 20대 초반까지 무던히도 고모의 속을 끓이던 아들이 건설업에 뛰어들어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고 두 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제 몫을 다 하면서 한시름 놓았으나, 아들의 외도에서 시작된 가정불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도가 지나쳐가면서 고모의 주름살도 급격히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면서 고모부를 먼저 떠나보내고 십수년을, 살던 집과 정든 고향에서 자연과 농사를 벗삼아 홀로 남아있던 고모의 얼굴은, 세월과 함께 찾아온 노쇠와 아들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비롯된 속앓이가 겹쳐서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병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내가 장가가는 것만 보고 죽으면 더이상 원이 없겠다던 고모에게 결혼을 앞둔 명절에 지금의 아내를 데리고 찾아 갔을때, 고모는 따뜻한 미소와 푸근한 가슴으로 나와 아내를 맞아주었습니다만, 고모의 눈가에 비치는 짙은 그림자와 기어나오듯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가 내 가슴을 안타까움에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내 결혼식에는 참석하겠다던 고모를 결혼식때 보지 못하고, 점점 더 잦아지는 고모의 병원 왕래 소식을 들으면서 때가 멀지 않았음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세상의 모든 아픔이 그렇듯이 고모의 부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형, 고모.. 돌아가셨대.."
무슨일 때문이었는지,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핸드폰 너머 동생의 목소리는 아득하게 들려왔습니다. 동생과 언제 어떻게 고모댁으로 내려갈 것인지를 상의한 후, 통화를 끝내고 나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고모의 부음을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슬픔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친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에게 고모는 친할머니 같은 존재였고, 고모와 우리 집안의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고모에 대한 마음이 더욱 애틋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나를 아내는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치른 후, 고모의 집 뒷산 고모부 옆에 마련된 장지에 도착하여 상여를 메고 고모의 가시는 길을 도왔습니다. 관을 내려놓고 흙을 덮어 봉분을 쌓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드실 음식을 올리는 중에 고모의 소지품들을 태웠습니다. 햇살은 따사로왔지만, 잠이 부족해서였는지, 아직 서늘한 아침 공기에 한기를 느꼈기 때문인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가까이 다가가 불타 사라지는 속세의 미련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전세기간이 끝나가면서 집주인은 전세금을 3천만원씩이나 올리겠다고 합니다. 내가 사는 곳에도 뉴타운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어서 처음 이곳에 올 때 융자 좀 얻어서 좀 작더라도 집을 샀으면 지금쯤엔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을텐데, 신혼이라고 일단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욕심에 자기가 철이 없었노라고 아내는 푸념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투자가치가 있는 집을 보러 다니는게 일이 되었습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구역 안에는 이미 오를만큼 올랐지만, 지금 사더라도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는 말도 있고 뉴타운 인접지역이 더 투자가치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인접지역 역시 뉴타운 구역과 비교하여 결코 만만치 않게 집값이 뛰어서 오를만큼 올랐으니 차라리 좀 더 외곽으로 가는 게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내는 어쨌든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한다고 말합니다. 나도 이렇게 가다가는 평생 집한칸 장만하지 못하고 이사만 다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야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집이란 거처하기 편하고 쉬고 잠자는 곳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두배 가까이 뛰어오르는 집값 때문에 집을 사고 거기에서 이윤을 취해 더 좋은 집을 구하려는 이유에서 집을 사려한다는 내가 마땅찮아 보입니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다는 김규항의 말에 따른다면 나는, 내 양심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도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다는 스스로의 힐난에 쫓겨 나는 결국 이 근처 어딘가 투자가치가 아주 좋다고 침을 튀기는 부동산업자의 꾀임을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게 되겠지요...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고모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잔불에 흙을 덮어 불을 끄고, 사촌들 몇몇과 함께 주변정리를 하고 고모의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귀경길이 번잡해지기 전에 고모의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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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일상2008. 3. 2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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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좋아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디카를 들고 나왔다.
미풍은 뺨을 간지르고 따사로운 햇살은 기분좋게 온몸을 감싸안으며
부드럽고 포근한 하늘은 파랗게 미소짓고 있었다.

담장옆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잡초와 이름모를 꽃들을 카메라에 담다가
하나의 낯선 그림자가 내 앞에서 느릿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을
액정화면을 통해 발견하고는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거친 길 위에서 휘적이며 걸어가던 그림자도 걸음을 멈추고
그의 모습 속에 나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가 언제나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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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일상2008. 3. 16. 03:25

때로는 고백하지 않는 편이 짐지지 않아도 될 짐을 덜 수도 있고,

때로는 화해하지 않는 편이 닥쳐올 반복적인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논리적이지 않는 편이 쓸모없는 피해의식에 젖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가벼운 편이 묵직하게 당기는 뒷골의 통증을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침묵하는 편이 소란스런 오후의 하늘을 올려다 볼 기회를 줄 수도 있고,

때로는 믿지 않는 편이 믿음을 배신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돌아보지 않는 편이 가슴 시린 공허에 신음하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사랑하지 않는 편이 깊게 파인 상처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편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외로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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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언행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좋게 해석하자면 이제야 겨우 철이 들어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철이 덜 들었을 때의 천방지축이 투박하고 부끄럽지만 순수하고 사심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기에 이제 다시는 그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이 슬퍼지기도 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간혹 노래방에 가면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고래고래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면서
'왜 하늘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날까
그것 조차 알 수 없잖아
왜 어른이 되면 잊어버리게 될까
조그맣던 아이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렇게 하는 것 조차 계면쩍어 합니다.

언행이 조심스러워진다는 게 동심을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철이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이제는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점점 더 심각하게 자각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다시 언행이 조심스러워지게 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은 짐지고 싶지 않다는 얄팍한 심사인 셈이지요.

한동안 뭣도 모르면서 좌충우돌 끄적여댄 적도 있었을 때는, 그것이 내안의 찌꺼기를 배설한다는 것으로 의미축소하여 스스로에게 당위성을 부여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언젠가부터는 그 배설물을 생산할 밑천이 동이 난 탓도 있으나 그 배설물에게도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은 좀 더 심각하게 나를 옥죄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배설은 되지 않고 간혹 냄새나는 분미물을 동반한 방귀만 뀌는 게 고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행을 삼가하고 배설을 억제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그것은 내 안에 산재해 있는 찌꺼기가 조금씩 조금씩 돌돌돌 말려지더니 무시할 수 없는 크기로 자라서는 단단하게 굳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하자면 신념이라고 불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놈이 그 안에서 그냥 또아리 틀고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수시로 내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욕설을 퍼붓습니다.
"인간아, 왜 사냐? 밥먹고 똥싸고 퍼질러 자기 위해 사냐?"

그 놈의 욕설에 욱- 하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그 놈의 말이 하나 틀린 것 없기에 매번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맙니다. 언행과 배설 뿐 아니라 신념에도 책임이 따르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고역스런 일임이 분명합니다.

신앙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얼치기 교인인 내가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교회에 다니는 건, 아내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함도 있지만 포도청인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빤한 거짓말과 해괴한 논리로 무장된 일상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기회를 그나마 교회에서는 가끔씩이라도 제공해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눔이니 봉사니 사랑이니 하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기회 말입니다.

3년생 서당개보다는 좀 더 영특한 두뇌를 소유한 존재인 나는 얼치기일지라도 8년째 교회를 드나들게 되자 나름의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하게 되더군요. 예수는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빈민, 노동자, 여성, 어린이, 장애인, 병자, 동성애자 등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임하여 그들의 삶과 함께 함으로써 사후 가장 높은 곳에서 추앙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 예수의 삶을 기록한 것이며, 자신이 스스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비록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해도 예수의 삶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건 예수의 삶에 다가가려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나와 같은 인간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고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교회안에는 예수는 없고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들로 넘쳐날 뿐이며 좁쌀보다 못한 위선을 던져주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예수의 사랑과 나눔과 봉사를 들먹이는 것에 비위가 상했습니다만, 예수가 설파했던 가르침에 공감하는만큼 내가 얼마나 참혹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전 손문상 화백의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수와 성탄의 의미를 이처럼 간명하고 가슴아프고 따뜻하며 눈물나게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바라보았고, 그 이후 한참을 더 오래도록 그 그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태안에 간다는 건, 나눔과 봉사로 포장된 위선쪼가리 하나를 던져 놓고 그동안 행한 수많은 죄악을 참회한 후 그나마 그 죄악의 하나라도 사함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는데서 위안을 찾는 것일 수도 있고 이전에 수많은 고통들에게는 침묵하다가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고통을 호소하는 것에 꼴뚜기 뛰듯 부회뇌동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나는 가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태안에서는 아직도 기름냄새가 물씬 풍겨 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닦아낸 바위와 돌들이지만 그것을 들쳐내자 여전히 기름때가 배어나왔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 피해가 절망적이지만, 자신의 위선과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한 나같은 인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순수한 사람들은 간절히 기원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절망하지 않기를...

희망을 포기하여 더이상 스스로의 몸에 불 붙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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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일상2008. 3. 14. 00:47

입춘이라지만 동장군의 시퍼런 서슬은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리게 한다. 늦은밤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고, 어찌하다 보니 저녁을 걸러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 쥐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따분함과 굶주림을 잊기 위해 책을 들여다 본다.

 

몇 개의 역을 지나는 동안 엉덩이 밑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에 나른한 졸음을 느끼면서도 흐리멍텅해진 시선은 책에 두고 있을 무렵, 책을 든 팔을 가만히 건드리는 사람의 손이 눈에 띈다.

 

"지갑 떨어뜨리셨는데요."

 

사람좋아 보이는 중년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지갑을 받아든다.

 

"제 지갑이 아닌데요... 아까 앉아있던 분이 떨어뜨리셨나 봐요."

 

기왕에 받아 든 지갑을 중년남자에게 다시 돌려주기도 뭐해서 지갑을 주머니에 넣는다.

 

"나중에 찾아줘야겠네요."

"그래야겠죠."

 

중년남자의 미소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책을 바라보다가, 문득 지갑을 꺼내 뒤적여 본다. 학생증과 몇 개의 마일리지 카드, 오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지갑에 마침 당사자의 연락처도 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아무개씨죠? 아까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인데요. 지갑을 떨어뜨리셨네요. 지금 여기가..."

 

마침 정차해 있는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회현역인데, 여기서 기다릴테니 오셔서 전화하실래요? 발신자 번호 찍히죠?"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역사 의자에 앉아 열차가 들어올 때마나 휘몰아치는 바람과 냉랭한 의자의 한기를 엉덩이로 느끼면서 지갑의 주인을 기다린다. 다리를 꼬고 앉아 손에는 책을 들고 있지만,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아이고, 배고파라. 내일 찾아 줄 걸 그랬나?... 걍 우체통 같은 데 넣어 버려도 됐을 텐데... 춥긴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다음날 지갑을 전해 주려면 어찌됐든 그로써는 원치 않았던 많은 시간을 들여 지갑있는 곳까지 그가 와야만 하고, 우체통 같은 데 넣어 버린다면 그 지갑이 그에게 당도하는 시간이 경험상 한 달 이상이 걸리리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바로 찾아 주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장의 불편함과 귀찮음과 배고픔에 슬며시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들여다보면서 지갑을 찾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외관의 그럴듯함에 비해 그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갈등은 우스꽝스럽게 뛰뚱거린다. 열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는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핸드폰을 꺼내 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 있다.

 

손짓을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그가 다가오자 지갑을 건네준다. 지갑을 받아 든 그는 내용물을 잠깐 확인하고는 멋쩍게 미소를 짓는다.

 

"마침 연락처가 안에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 근데, 제가 돈도 없구..."

 

고마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그를 보자 방금전까지 충돌하고 있던 우스꽝스런 갈등이 새삼 부끄러워 얼굴까지 붉어진다.

 

"괜찮아요... 차 왔는데, 어서 가 보세요."

 

여러차례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그는 되집어 가야 할 열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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