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ism, 譫妄, 망상...

차도 가장자리에 자전거와 함께 사람이 넘어져 있다. 사이클복을 입고 헬멧과 보호장구를 쓰고 있었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구별되지 않았다. 몸짓과 덩치로 보아 여자인 듯하다. 발목 언저리에 얹혀 있는 자전거의 무게가 버거운 듯 꿈틀거렸다. 어떤 사고로 넘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난간이 있어서 몰려든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난간을 넘어서 자전거 아래 깔린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이던 자동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차도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자동차를 운전 중이던 여자가 차에서 내려 넘어진 사람에게 다가갔다. 꿈틀거리기만 할 뿐 자전거를 밀쳐내지 못하던 사람을 도와 여자는 자전거를 들어 올려 옆으로 밀었다. 자전거를 치운 여자는 넘어진 사람을 부축해 일으켜 보려 했지만, 넘어진 사람의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신호 대기 중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에 시선이 갔던 남자는 넘어진 사람을 발견하였다. 넘어진 사람이 꿈틀거리며 자전거조차 들어 올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작은 사고가 아님을 직감하였다. 차를 세우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급한 업무로 시각을 다투어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상황이 막아섰다.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는 중에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여자가 나타났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씁쓸한 자괴감이 같이 들었다. 신호가 변해 차를 진행시켜야 했기에 그 이후의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급한 업무는 처리하였지만, 자전거를 들어 올리지 못해 꿈틀거리던 넘어진 사람의 모습이 종일 남자의 눈에 어른거렸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조차 이다지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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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방영할 때는 본방 사수하지 않던 아내가 며칠에 걸쳐 <왔다! 장보리>를 다시보기로 1회부터 마지막까지 틈날 때마다 시청하는 통에 나 역시 <왔다! 장보리>를 군데군데 보게 되었다. 그동안 원체 화제가 되었던 연속극이었기에 뉴스를 통해서,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즐겨 보시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주말 가족 모임에서 잠깐씩 어머니와 함께 시청한 기억을 통해서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건너뛰면서 보게 되니 아내에게 중간의 내용을 물어가면서까지 <왔다! 장보리>를 시청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이 연속극의 성공 요인은 연민정이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 연민정의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에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나 한없이 선량해서 한없이 고통받는 장보리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연민정에게 반드시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나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연민정의 욕망 자체를 비난하거나 그것에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민정의 욕망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것, 더불어 성공하고 싶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연민정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그 욕망 보다는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연민정이 저지르는 소시오패스적인 만행에 분노하는 것이리라.

 


 부모와 자식과,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자매나 마찬가지일 수 있는 사람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그들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이용하고, 사랑이나 우정,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심성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자신의 편의대로 활용하고, 그 모든 행위에 단 한 치의 죄의식이라든가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합리화하는 유체이탈의 최극단을 보여주는 연민정에게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 연민정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자신으로 인해 발생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은 오로지 다른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것이며, 설혹 그 희생과 고통이 일부 있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이득을 주기 위한 자신의 충정에 의한 것이므로 그러한 희생이나 고통은 감내해야 할 필연적인 부산물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연민정의 모습은 쥐와 닭의 계보로 이어진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필수적인 성향이지 않은가!

 


 연속극은 특성상 언젠가는 끝을 맺어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는 달리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선악의 구도에서는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작가가 열린 구도를 채택하고 싶어도 연민정 같은 인물이 호의호식하며 살고 장보리는 끝내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연속극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장보리>와 같은 연속극에 심취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러한 대리만족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는 모습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선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가상에서나마 보고 싶은 것이다. 불행한 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의 책임이 결국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연민정이 계획한 악행이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은 연민정 혼자만의 욕망과 능력 때문은 아니었다. 연민정의 주변에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다가 연민정에게 약점을 잡힌 사람들, 혹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민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연민정의 악행을 실행 가능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지만, 가만히 그 내막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도 각자 나름의 고민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어 때로는 동정심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각자 나름의 고민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오늘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악행에 침묵하는 한 현실의 연민정이 정의의 심판을 받거나 최소한 현실의 장보리만이라도 행복해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 부정 선거로 당선된 나라,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할 기관이 부정 선거를 주도하는 나라, 공영 방송의 기자들이 국민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나라, 그럼에도 시청료를 올리지 않아서 공영 방송이 위기라고 국민을 협박하는 나라, 전과 14범이 대통령이었는데 재임 기간 내내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던 그의 가훈이 정직이라는 나라,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나라, 재계 순위 1위인 기업이 노조가 없는 나라, 친일파라면 쌍심지를 켜고 공분하면서도 친일파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는 나라, 3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왜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가를 명백하게 밝히자는 피해자 가족들의 가장 최소한의 요구 조차 묵살되는 나라, 이런 나라가 가능해지는 것이 과연 몇몇의 연민정 때문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이 총체적인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암담해 보이지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할 수 있다. 결코 악행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 무엇이 문제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그래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연민정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다음 회차 연속극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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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항의 글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오늘도 거리에서 불의한 세상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나, 안온하고 평이한 삶을 거부한 채 고단하고 질척이는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늘 느끼는 부끄러움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과 같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던 고 김대중 선생의 말을 새기면서도 하루하루 벌레처럼 살아가는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귀신이 들렸다는 건 뭔가? 사람이 어떤 다른 정신에 장악되어 자기 스스로 온전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과 입이 돌아가고 미친 말을 해 대는 것만 귀신 들린 게 아니다. 진짜 심각한 귀신 들림은 오히려 겉보기엔 멀쩡해서 귀신 들렸다는 걸 알아차리기 어려운 상태다. 이를테면 오늘 우리는 이른바 ‘행복과 미래’를 얻기 위해 물질적인 부에 집착하느라 정작 단 한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한 채 인생을 소모하는, 돈 귀신에 들린 ‘멀쩡한’ 사람들을 헤아릴 수 없이 볼 수 있다. -- <예수전> p35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가 김진숙이나 체 게바라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양심이 악의 편에 좀먹지 않도록 늘 깨어 있게 노력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최소화하는 것이리라 자위한다. 그렇게 늘 깨어 있기 위해 나는 김규항의 책 <B급 좌파>와 <나는 왜 불온하가>를 가까이에 두고 때때로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어 보곤 한다.

 거기에 씌어 있는 어떤 문장도 단숨에 쓰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할 수 없다. 한 자 한 자가 온몸의 피를 쥐어짜듯 토해져서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된 그의 글에는 아픔, 고민, 사색, 진정성이 있고 거기에서 정신, 분노, 저항,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제 그의 <예수전>도 앞으로 두고두고 내 가까이에 놓고 때때로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어 볼 책 목록 중 하나가 되었다. 

 <예수전>은 마르코복음(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예수가 지향했던 이상사회(하느님 나라)가 무엇이며, 어떻게 거기에 이르게 될 것인지를 김규항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 지금 여기-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예수의 가르침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한 책이다.

 예수는 한 사람의 변화가 우주의 변화인, 우주의 변화가 한 사람의 변화인 그런 변화와 그런 혁명을 바란다. -- p169

 중세 카톨릭 만큼이나 부패하고 타락한 오늘날의 개신교와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신도들로 인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이 폄하되어 본질이 흐려지고는 있으나, 예수의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모두가 받아들인다면 마침내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예수는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믿음’을 가지라고. 믿음이란 어떤 대상에게 나를 완전히 여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란 하느님에게 나를 완전히 여는 것이다. …(중략)… 하느님은 교회나 기독교의 성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온 세상에 관련하며 온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하는 존재다. 믿음은 결국 하느님 나라, 즉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꿈이다. -- p185

 물론 나도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인가라는 회의는 든다. 김규항도 본문에서 말했듯이 모든 사회 성원의 이해와 정체성이 완벽하게 하나인 세상이 아닌 한 불평등한 관계는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설혹 모든 사회 성원의 이해와 정체성이 완벽하게 하나로 모아진다 하더라도 욕망이 거세된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동은 고사하고 그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발적 노동이 이어질 수 있을까? 모두가 김진숙이나 체 게바라가 될 수 없듯이 모두가 예수가 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에서도 언젠가 웃음 지을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 세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변화는 과거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긍정적인 에너지로 세상을 충만케 하고 있다. 그 에너지가 모이고 모이면 거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관계로 세상은 무한 수렴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며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사람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끈기 있는 노력에 의해 일어난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던 세상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일어나는 혜택은 시나퍼의 그늘처럼 모든 사람,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적대하고 탄압한 사람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진다. 역사에서 보듯 세상의 변화는 늘 그래 왔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지금 쉬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p80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이 결국 예수의 가르침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벌레처럼 오늘도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깨어있기만 한다면, 그 변화에 조금씩 조금씩 동참해 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정히 억울하면 벽에 소리라도 질러보면서...

 우리가 애끊는 순간은 낯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제 아이나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면할 때다. 그런데 예수는 난생처음 만난 나병환자에게 애끊는다.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사람의 속내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예수의 모든 행동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의 분노 역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이 자연스레 그들의 고통을 낳는 사람들과 사회체제에 대한 강렬한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에게서 배우는 일 역시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 출발한다. -- p38
~39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리 천하고 막돼 먹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품위 있게 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악다구니를 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반대로 1년 내내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도 충분히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품위를 잃을 행동을 할 이유가 있겠는가. 사람은 품위 있는 사람과 품위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 p59

 진정한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불쌍한 사람’과 그 불쌍한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역할을 나누어서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쇼가 아니라, 누구든 제 능력과 개성에 맞추어 정직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나눔은 자연도 자원도 돈도 식량도 집도 땅도 모두 하느님의 것임을 깨닫는 것이며, 하느님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고루 나누어 쓰라고 한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사적으로 소유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모두 함께 풍요롭고 만족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p110

 사람이란 대개 보고 듣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는다. 믿는다는 건 실은 욕망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인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 사회의식을 가졌다는 많은 사람들이 입만 벌리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말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극복될 수 있다는 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중세의 암흑을 무너트리는 훨씬 더 어려운 변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바로 그 덕에 그들 스스로가 법적인 차원에서나마 평등과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않는 이유는 실은 그들이 그 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심은 그들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반대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지,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진짜 극복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의 지난함, 그리고 그 극복이 가져올지 모르는 제 얼마간의 기득권과 사회적 지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는 일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구석에 끼어 안온하게 생을 보내는 일을 분명히 선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되지도 않은 논리로 제 탐욕과 이기심을 드러내며 자본주의를 찬미하는 막돼 먹은, 그래서 많은 인민들에게서 반감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입만 벌리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그래서 많은 인민들에게서 양식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지는 사람들, 그러나 절대 자본주의가 극복되길 바라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그들이다.
-- p112~113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쌓은 부는 사회적으로도 존경받고 교회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이라 여겨진다. 여기에서 ‘정당한 방법’이란 ‘합법적인 방법’을 말한다. 그러나 법이란 한 사회의 지배세력이 자신들의 이해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사회 성원들을 강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공정한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회 성원의 이해와 정체성이 완벽하게 하나인 사회가 아니라면, 모든 사회 성원에게 공정한 법은 존재하려 해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법은 어느 탈옥수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약하고 가난한 사람의 작은 잘못에 엄격하지만 힘세고 부자인 사람의 큰 잘못엔 늘 관대하다. 그런 현실에서 부가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는 주장이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쌓은 부는 정당하다는 주장은 기만적인 것이다. -- p161

 비폭력주의는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제국의 미사일 공격에 제 새끼가 찢겨 죽은 어미가 죽음보다 더한 슬픔을 뚫고 ‘우리는 똑같은 폭력의 보복을 해선 안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누구도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폭력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이 점잖은 얼굴로 ‘저항으로서 폭력도 폭력이다’라고 뇌까리는 건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며 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폭력보다 더 끔찍한 폭력이 된다.


 비폭력주의의 목표는 ‘비폭력’이 아니라 ‘저항’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예수는 결코 안온한 예배당이나 연구실에서 비폭력론을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는 언제나 폭력의 현장에서 그 폭력을 몸으로 감당하며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20세기 비폭력주의 운동의 대명사’라 일컬어지지만 일각에서는 인도 ‘민족’에 집착하여 인민들의 정당한 투쟁을 훼방한 사람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간디조차 ‘무기력하고 비굴한 비폭력보다는 차라리 정당한 폭력이 낫다’고 말했다. 비폭력주의는 폭력적인 투쟁 방법을 넘어서는 투쟁 방법이지 폭력적인 투쟁 방법에도 못 미치는, 투쟁의 정당성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모도하려는 유약한 인텔리들의 요사스러운 말장난이 아니다. 진정한 비폭력주의자들이 결국 폭력에 희생당하는 운명을 갖는 건, 지배체제가 그들에게서 무장투쟁을 선택한 운동가들보다 오히려 더 큰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 p238~239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라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인 그가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영성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영성가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영성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예수가 비폭력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비폭력주의자’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서 예수의 모습에서 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똑 떼어 내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입네, 예수는 영성가입네, 예수는 평화주의자입네 하는 것은 예수를 욕보이는 일이다. 사형은커녕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짓이다. 

 사회적 모순이 존재하는 한, 다들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졌다고 해도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예수를 좇는 사람은 지배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가 살던 세상처럼 지배체제와 불화했다고 쉽게 죽임을 당하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배체제의 직간접적 탄압과 주류 사회에서의 배제,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에게서(심지어 같은 길을 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일어나는 오해와 곤경은 다르지 않다. 지배체제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와 곤경에 처하지 않으면서, 이쪽에서도 칭찬받고 저쪽에서도 존경받으면서, 예수를 좇고 있다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 p2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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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을 산악 경비중대에서 보냈던 그는 매일 해발 천미터가 넘는 산의 초소를 30분 내에 주파해야만 했고, 그 산 위에서 최소 5시간을 혼자서 멀뚱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부대원 중 많은 이들은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가운데 무릎에 물이 차올라 관절을 수술해야만 했고, 벼락을 맞고 살아남은 병사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열악하고 혹독한 군 생활을 거쳤다고 생각하는 다른 대부분의 군바리들처럼, 그가 근무했던 산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산이 철천지원수인 것처럼 산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또한 그는 군을 제대한 후에도 한동안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도 극도로 기피하여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세월은 인간의 기억을 희석시킨다. 그것은 즐거움이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고통이나 절망마저도 그 반응 강도를 서서히 낮춰준다. 군을 제대한 후 2년이 지난 어느 겨울 그는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계획한 지리산행을 동행하게 되었다. 뱀사골에서 시작하여 산 정상의 능선을 타고 노고단까지 갔다가 기나긴 내리막의 돌계단들을 걸어 내려오는 일박 이일의 여정은 그에게 산의 위대함을 순식간에 각인시켜준 경험이었다.

추위가 뼈에 스미는 날씨였음에도 산을 오르는 순간부터 몸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올라도 올라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정상에 다다른 순간, 한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하늘과 닿아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시시포스(Sisyphos : 보통 시지프스로 알려져 있는)라는 인물이 있다. 코린토스라는 나라의 못된 왕으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는데 산 정상에 커다란 바위를 굴러 올리면 그 바위가 굴러 떨어져 다시 그 바위를 굴러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이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바위를 굴러 올리는 순간에 그는 산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이른 기쁨도 잠시,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는 그 바위를 다시 굴러 올리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알베르 까뮈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무수한 고난을 거쳐 바위를 끌어 올렸는데, 그 바위가 굉음을 내며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것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시시포스는 산을 내려간다. 터덜거리며 내려가던 시시포스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까뮈는 바로 그 순간에 시시포스가 실존을 자각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려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결코 산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오른다는 사실, 올라 보기라고 해야 한다는 그 과정을 중시한 것이 허무주의라면, 까뮈의 실존주의는 어떠한 존재도 그 존재에 이유가 있다는 것, 산을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으로 완벽하게 존재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산은 오르는 이상으로 내려오는 것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한치도 다르지 않게 오름과 내림의 반복되는 작은 곡선이 하나의 커다란 오름과 내림의 큰 곡선을 그리며 마감하는 삶과 닮아 있다.

고단에서 한없이 이어진 내리막의 길은 길고도 지루하게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오르는 이상의 고난이 내림에서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떻게 내려가느냐 하는 것, 무엇을 자각하면서 내려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이후 계속되었던 지리산에 대한 동경은 이번 휴가를 지리산행으로 결심하게 하는데 아무런 주저도 없게 하였다. 아침 6시 남원행 버스에 올라, 남원에서 백무동에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백무동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만 13일 동안 하루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었고, 마지막 이틀 동안엔 태풍 올가가 기세를 떨쳐 사람들이 밖에 나올 수조차 없었다고 식당 아주머니는 말했다. 겨우 햇빛을 볼 수 있는 날 왔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면서 친절하게도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물을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가 있었지만, 산은 낯선 방문객을 쉬이 반겨하지 않았다. 험한 바윗길을 타고 오르자 곧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렸다. 태풍의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곧 확인되었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쩍쩍 갈라진 채 넘어져 있었고, 대나무도 많이 부러져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모진 시련을 견뎌왔을 나무들이었지만, 외롭게 자라있는 것 치고 성한 것이 별로 없었다. 자연의 법칙은 철저하게 독불장군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목터 산장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계획은 거기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것이었지만, 다시 태풍이 몰려온다는 산장지기들의 말에 바로 하산을 강행하였다.

산장도 하나의 봉우리였지만, 안개와 구름에 가려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휴가 내내 산장에서 발이 묶여 있고 싶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하산을 서두르다 보니 미끄러져 왼쪽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쭉 상처을 내고 말았다. 산은 조심스럽지 않은 자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에서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수고하십니다", "조심해서 올라(혹은 내려) 가십시요", "반갑습니다"라고 말한다. 등산로와는 정 반대의 하산로를 택한 탓에 산을 다 내려오자 경상도였다. 운이 좋아 진주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해남에 가기 위해서는 진주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또 갈아타야 했지만, 진주 시내에 도착하자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고 밤도 깊어 방을 잡고 짐을 풀었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계획을 바꿔 부산으로 목적지를 바꿔 광안리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태풍은 진로를 수정했는지, 바람이 약간 부는 외엔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숙소를 정해 짐을 풀고 바다를 바라보며 긴 백사장을 걸어가다가 방파제에 이르자, 황혼이 완전히 저물 때까지 방파제에 앉아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의 억지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 했는데 혼자서 갖은 부산을 떨다가는, 그래... 이제 그러는 네가 지겹고 나도 지쳤다, 그러니 이제 그만 두자라고 하는 건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 처사였다.

언제나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무성의함에 불만을 털어 놓았지만, 과연 그는 얼마나 진실했던가? 그는 과연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당당하게 그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가? 과연 그는 그러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언제나 자신 생각만 하지는 않았던가? 언제나 그의 기준과 자신의 가치 판단과 자신의 사고를 통해서 그녀를 이해한다느니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느니 하지는 않았던가?

저녁을 먹고, 비치비키니라는 천장이 높고 인테리어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법한 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비가 가끔씩 내리기도 했지만, 곧 그쳤다. 다시 백사장에 나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자동차 소리와 하늘이 꾸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파도의 포말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혀 다른 목소리가 응답했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끊었다. 어두운 바다 너머에서 건설 중인 부산의 동서를 잇는 거대한 다리의 형체가 희미하게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을 집어 삼키고 있는 인간들의 만용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리라... 아니, 벌써 치르고 있는데도 몽매한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그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그의 인내심이 부족한 탓이고 모든 것이 다 그의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생겨 먹었고, 그녀의 그런 점을 납득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설명하려 하지도 않고, 그 자체로서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인정해 주길 바라지만, 그렇다면 그의 자체로서의 존재는? 그렇다면 그는 무엇인가?

그의 존재를 무시한 채, 그녀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진실로 옳은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존재하는 것이 그렇듯이 하나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만일 두 존재가 서로에게 의지해 존재해 가기 위해서는 조금씩의 양보가 필요한 법이다. 그 양보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조차 거부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흠... 역시 자기 합리화로 치닫고 있군.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다시 서울에 온지 만 하루가 돼 가고 있다. 휴가 마지막 날인데, 언제 지리산과 광안리를 가봤냐는 듯이 종일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고 있다. 다시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참 따분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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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영진공 비됴 검열위
2002년 4월

 

자~ 왔어요, 왔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냐. 애덜은 가, 애덜은 가.

코딱지만한 나라에 800개가 넘는 영화관이 우후죽순 솟아있고, 백화점을 지을래두 멀티플렉스가 들어서야만 건축허가가 떨어질 지경이며 연간 5천만명 이상의 영화인구가 극장을 찾는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때는 바야흐로 따땃한 햇살이 아침마다 똥꼬를 찔러대는 초여름. 

니덜의 명랑 영화관람 추구권을 위하야 단 하루도 편히 발뻗고 디비져서 콧구멍 귓구멍 정화작업에 전념해 보지 못하고 있는 본 공사, 어떡하믄 니덜의 나른하고 궁상시러운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인가까지 고민하다 보니 봄맞이 특별 기획 씨리즈를 통해서 갖가지 기능성 비됴들을 소개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도다.

그렇담 본 우원이 오늘 들고 나온 비됴들은 또 무어냐? 미제 및 국산 영화는 다 거기서 거기 같고 도대체가 신선함을 못 느끼는 미제 및 국산 영화 불감증 환자덜은 물론이요 유럽 및 제3세계 영화들은 무조건 몽조리 난해하고 지루하기만 하다는 후천성 편식증후군 환자덜에게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비됴들로서 동네 비됴가게 어디를 가도 구석탱이 어딘가에 하나쯤은 짱박혀 있는 작품들 되겠다. 

자, 따라와라. 쪼메 지루한 것 같아도 볼 만한 구석들이 있는 필관 비됴들이니까.


성스러운 피 (Santa Sangre)

 

당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1989년 멕시코와 이탈리아에서 공동 제작한 것으로 그 이름도 졸라 컬트틱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역작 되겠다. 당 영화를 이야기 하자면 당 영화에 각본, 감독을 맡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를 먼저 디벼볼 필요가 있으므로, 과연 이 넘이 어떤 넘인가 보도록 하자. 디벼보기 싫어도 본 우원이 디벼보기로 작정한 이상 걍 디벼보자. 

칠레에서 태어난 러시안계 유태인인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25살까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떠돌아 댕기다가 파리로 건너가서 팬터마임의 대가 에티엔느 두크레에게 마임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때 같이 수학한 동기가 마임의 피카소라 불리는 마르셀 마르소이다. 조도로프스키가 폭력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유유가 상종한 모양이다. 

당시 조도로프스키는 팬터마임에 관한 영화와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을 영상화한 실험적인 단편영화를 만들어서 동네 카페에서 상영하였는데, 들리는 바로는 그 영화들을 보고 사람들이 환장을 했다고 하고 그 중에 한 넘인 장 콕도는 "따거"를 연발했다고 하는데, 장 콕도가 그 당시 중국어를 알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 영화에서도 졸라 현란한 마임쇼가 등장하는데 그거 보는 재미만으로도 벌써 본전은 충분히 뽑을 수 있으리라 사료됨이다. 

이후 조도로프스키는 리들리 스콧, 테리 길리엄, 오시이 마모루, 피터 정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 만화작가 뫼비우스(SF 만화 잡지 메탕 위를랑(미국의 성인만화잡지 헤비메탈의 전신)을 창간, 그래픽 아트를 연상시키는 신비롭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로 쟝 지로가 본명이란다)와 <잉칼:존 디풀의 모험>을 작업하였고, 67년 <판도와 리스>로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70년 <엘 토포>라는 컬트 영화의 고전에서 감독, 주연, 각본, 음악, 미술 등등 1인 9역을 맡아서 혼자 다 해처먹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엘 토포>가 얼마나 뻑가는 것이었는지 이 영화에 감동 먹은 넘들이 앤디 워홀, 믹 재거, 데이빗 보위 같은 희대의 싸이코들이었고, 존 레논은 <엘 토포>에 허벌나게 심취한 나머지 이 영화의 판권을 아예 구입해 버려서 <엘 토포>의 전 세계 판권은 애플 레코드사가 갖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후 이 넘은 장장 10년 동안 영화 <사구>를 제작하려고 똥꼬털에서 땀방울 떨어지게 뛰다니가다 지 아들인 보론키스 조도로프스키와 오손 웰즈, 살바토레 달리, 글로리아 스완슨 주연으로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상영시간을 16시간짜리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우덜이 알고 있는 영화 <사구>는 데이빗 린치에 의해 만들어진다. 

데이빗 린치의 <사구>는 80년대 초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에 필적할만한 철학적 SFX 대서사시로 완성되었는데, 조도로프스키는 이 영화를 보고 "질투 때문에 일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 넘의 황당한 똥고집으로 만들려다 무산된 또 하나의 영화로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걸작 <네이키드 런치>가 있다. 

아이, 씨바.. 그런 넘이야? 그럼 <성스러운 피>는 안봐도 파노라마라구 단정지어 버리는 불순 반동 세력 있을 줄 안다. 글타. 사실 <성스러운 피>도 거기에 등장하는 신화와 상징, 은유와 전설을 일일이 해석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좌측후두부경련 후 마비현상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고 관람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때에 따라서 영화는 그저 보여지는 그대로의 이미지와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우덜의 가슴에 삘 꽂히게 할 수도 있다. 당 영화 <성스러운 피>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관람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20여년전 멕시코에서 한 젊은 남자가 30명의 여자를 살해하여 정원에 파묻어 버린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당 영화는 붉은색과 흰색으로 대립되는 색의 이미지와 멕시코의 거리음악을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로 펼쳐 보인다. 그렇게 색의 이미지와 환각적인 음악으로 펼쳐주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에 젖어서 당 영화가 그저 보여주는대로 니덜의 가슴을 열어두다 보면 경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니덜의 영혼에 잊을 수 없는 컬트의 매혹적인 상처가 생기는 것을. 

한가지 조까튼 점은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무리 얘길 해도 도대체가 안심을 못하시는 우덜의 자애로우신 가위손들께서 우덜의 상처가 너무 깊어지는 것을 염려하시어 일정 시퀀스를 통째로 들어내 버리거나 군데군데에 자애의 흔적을 툭툭 흘려 놓으셨다는 점이다. 당 영화를 관람하기에 앞서 그 분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떠올리며 가운데 손가락을 불끈 들어올려 경의를 표해주기 바란다. 


순수의 비행(La Corsa Dell'Innocente)
 

 

상처난 영혼을 오래 끌어앉고 있으면 정신이 황폐화된다. 황폐화된 정신을 걍 놔두게 되면 어차피 조까튼 세상이니 명랑사회 건설해서 모하냐는 네거티브적 허무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최근 반장선거 후보에 출마하려다 줄반장 후보 경선에서 노풍에 물먹은 인죄가 네거티브 전략을 써먹더니 결국은 니덜끼리 다 해먹으라면서 줄반장 후보 경선에서도 사퇴하여 판을 깬 걸 보믄 네거티브란 어쨌든 명랑사회 건설에 불필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오매불망 명랑사회 건설을 추구하는 본 공사의 이념에 따라 본 우원 역시 니덜이 네거티브적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치할 수가 엄따. 그러므로 상처난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당 영화를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본 우원, 어쩌면 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지 몰겠다. 보고 배우길 바란다. 

당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1992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동 제작한 것으로 각본과 감독을 맡은 카를로 카를레이의 썩 훌륭한 데뷔작 되겠다. 난중에 이 넘이 헐리웃에 진출하여 만든 <플루크>는 굳이 이 넘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아도 양산해 낼 수 있는 전형적인 헐리웃 가족 영화이지만, 이 넘이 <순수의 비행>에서 보여준 놀라운 참신성은 <플루크>와는 그 격조에 있어서 비할 바가 아니므로 혹여 <플루크>로 인해서 당 영화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당 영화는 자고 깨면 총질을 일삼는 마피아 가문에서 태어난 천진난만 순진무구의 소년 비토가 경쟁관계의 마피아 조직에게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까지 죽이러 쫓아오는 킬러를 피해 도망댕긴다는 이야기 되겠다. 잔혹하고 무자비하며 고래심줄같이 끈질긴 킬러, 아슬아슬하게 도망댕기는 쥔공, 사정없이 죽어 나가는 쥔공 주변 인물들, 어디선가 많이 본 뻔할 뻔짜 스토리라고 눈치까는 넘들 있을 줄 안다. 



그러나 누누히 강조하거니와 영화의 쉣스러움은 스토리의 진부함이 아니라 진부한 스토리를 얼마나 영삼스럽고 고리타분하게 늘어 놓느냐 하는 데에서 쉣스러움의 가공할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당 영화는 그 진부한 스토리를 속도감 넘치는 편집과 사실적인 화면을 통해서 매끄럽고 흥미진진하게 연출하여 시종일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면서도 폭력의 잔혹성과 야만성을 순수한 한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거 이거는 니덜의 정신 건강에 유익하므로 잘 따라서 하고, 저거 저거는 니덜의 정신 건강에 유해하므로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좃선식 계몽주의를 설파하는 것도 아니다.
보편타당하고 순수한 선이 비타협적이며 폭압적인 악에게 쫓기고 내몰리고 위협받고 살해당하는 과정을 어설픈 극적 겐세이 없이 담담하고 섬세하게 펼쳐 보임으로써 우덜 안의 따사롭고 부드러우며 순수한 감성을 지긋이 자극한다. 


퍼니 게임(Funny Games) 

<순수의 비행>이 우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선의 관점에서 폭력을 바라보았다면, 당 영화 <퍼니 게임>은 우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의 관점에서 폭력을 바라본다. 당 영화가 전율스러운 것은 단지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너무나도 흔해 빠져서 일상화 되어 버린 폭력의 적극적인 공범자 내지는 동조자 혹은 방관자로 우덜을 끌어 들인다는 점이다.

당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1997년 독일에서 제작한 것으로 독일 태생의 오스트리아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살떨리는 걸작 되겠다. 미카엘 하네케는 폭력 3부작이라 불리는 <7번째 대륙> <베니의 비디오>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들>을 통해서 아는 넘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름 꽤나 날렸다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본 우원 폭력 3부작 중 하나도 본 게 없어서 폭력 3부작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몰겠다. 

또한 작년에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 남녀주연상을 휩쓴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노 선생님>이 온갖 찌라시에서 오도방정을 떨며 찬양되어지길래 국내 개봉이 이루어질 줄 알고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개봉의 개짜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 영화 <퍼니 게임>을 보구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지는 넘들 중에서 혹 생활이 넉넉한 넘이 있다면, <피아노 선생님>두 수입하여 국내에 개봉해 주기 바란다. 

생활이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본 우원의 간절한 염원을 쌩까는 넘이 발각될 시에는 계란을 빌리러 가게 됨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근데 이건 당 영화가 보여주는 줄거리이기도 하다. 당 영화는 본 우원의 강짜처럼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는 한 가족의 수난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호숫가 별장에 당도한 게오르크 가족에게 옆집에서 심부름 왔다는 낯선 청년이 계란을 빌리러 온다. 선선히 계란을 내주며 포장해 주겠다는 계란을 덜렁덜렁 들고 나가던 이 넘, 계란 4개를 들고 문을 열려다 바닥에 깨먹어 버린다. 

근데 계란을 깨먹고 졸라 미안해 하던 넘이 자기는 단지 계란을 빌리러 왔으니 다른 계란을 빌려 달란다. 딱 적반하장이다. 슬슬 기분이 조까타지기 시작하지만, 이웃과의 친분을 생각해서 다시 빌려 주려고 하는데 실수인지 고의인지 핸펀을 물에 빠뜨려 버린다.

짜증으로 꼭지가 돌 지경이지만, 실수를 미안해 하면서 실실거리는 넘에게 대놓고 화를 내는 것도 우습다. 서둘러 계란을 꽁꽁 포장하여 건냈더니만 계란을 들고 나갔던 넘이 개가 덤벼들어서 또 깨먹어 버렸다고 유들유들 뺀질뺀질한 넘과 같이 찾아와서는 계란을 다시 빌려달라고 생떼를 쓴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는 격언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게오르크 가족은 계란을 줘서 이 넘들을 쫓아 버리는 게 상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넘들에게 계란은 그저 빌미일 뿐이었다. 

계란을 받아 든 이 넘들은 골프채를 휘둘러 대면서 게오르크 가족의 신경을 건드리고 마침내 더러운 똥을 적극적으로 치우려는 가족에게 똥도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이 넘들의 뻔뻔함을 더이상 참지 못해서 쫓아내려는 남편 게오르크는 골프채에 다리가 또각 부러져 버린다. 

이제 재밌는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살아남을 것. 과연 게오르크 가족은 그저 재미로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 이 넘들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넘들은 그 게임의 공범자 내지는 동조자 혹은 방관자로서 바로 당 영화를 보고 있는 우덜 자신을 지목한다. 수많은 액숑 영화와 폭력 영화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폭행당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우덜에게 이 넘들은 우덜도 이 게임에 동참할 것을 속삭이고 채근하다가 윙크까지 해댄다. 


97년 제 50회 칸에서 불쾌한 장면 몇 있음이라는 경고성 멘트가 덧붙여져 상영된 당 영화는 그 불쾌함이 결국은 우덜 자신이 속으로는 은밀하게 원해왔던 것 아니냐고 뻔뻔스럽게 충동질한다. 그 충동질은 기존의 헐리웃을 비롯한 온갖 상업적 영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며, 그 비판을 미카엘 하네케는 기존의 영화적 관습의 테두리를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롱 테이크. 많이 들어 본 업자 용어일 것이다. 이른바 길게찍기 혹은 오래찍기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샷을 끊지 않고 한 번에 쭈우욱 찍는 걸 말한다. 롱 테이크가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롱 테이크, 롱 테이크 해대냐고 하는 불한당 있을 줄 안다. 

그러나 롱 테이크 이거 정말 어렵다. 생각해 봐라. 샷을 딱 딱 끊어서 찍으면, 잘못 찍을 경우 고 샷만 다시 찍으면 되지만, 최소 2, 3분에서 길게는 10분이 넘는 샷을 다 찍었는데 잘못 찍었을 경우 다시 찍을려면 필름값이 얼마나 더 들겠냐? 필름값 이거 장난 아니다. 그러므로 롱 테이크 이거 아무나 막 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 영화에서는 순전히 실수로 어린 아들이 젤 먼저 죽어 버리는데, 아직 죽이면 안돼는데 벌써 죽여 버렸다고 두 넘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싸우다가 게오르크와 아내를 묶어 놓은 채 어딘가 나가 버린다. 


어처구니없는 또라이 두 넘에게 어처구니없이 당하고만 있던 부부에게 어린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얼마만한 청천벽력이었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당 영화는 딱 세 번의 팬(카메라 위치를 움직이지 않고 카메라 헤드만을 좌, 우로 회전시켜 촬영하는 방식)만으로 10여분에 달하는 엄청난 롱 테이크를 선사한다. 안타까운 것은 필름으로 영사되어 볼 때보다 비됴로 볼 때 당 영화가 비교적 어두워져 보이는 탓에 이 전율스런 롱 테이크 장면이 필름으로 봤을 때 만큼의 감동을 비됴로 첨 봐서는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짤 수 있겠는가? 극장에서 못보면 비됴로라도 봐야지. 대신 좋은 동네 사는 독자라면 오백원으로도 빌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상으로 니덜 살아 생전에 한 번쯤은 꼭 봐 두어서 명랑 영화관람을 위한 정서 함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 아닐지는 니덜 알아서 하고) 유럽 및 제3세계 비됴 3편을 디벼보는 유익한 시간을 본 우원과 함께 했다. 

물론 이 외에도 매우 훌륭한 비됴들이 많이 있으나 누차 말했다시피 본 우원 워낙에 공사가 다망하다. 추후 기회가 되믄 새로운 비됴로 다시 만나도록 하자. 이상, 졸라. 

딴지 영진
유럽 및 제3세계 무비 전문 디빌링 우원
백운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나의 정직한 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

나의 추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거기서 문득 느끼는 경이로움.

 

이보다 더 견고한

출발점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나 자신에서 말미암지 않고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1920년 9월 10일 메리 해스켈

 

- 칼릴 지브란과 메리 해스켈의 서간 모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중에서 -

 

본질적으로 나는 이 말을 믿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나 자신에서 출발하고 나 자신의 나약함, 모순, 부조리, 위선과 추악함을 회의함으로써 나는 나의 무지를 자각하고 그것은 나를 보다 성숙해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이 믿음으로만 끝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이 빌어먹을 사회의 부조리에 격심한 분노를 느낍니다. 허울좋은 장미빛 환상에 가려 고역스런 진실은 외면을 당하고(스스로의 진실성이 눈꼽만큼도 진실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것 또한 우스꽝스럽습니다만), 너무나도 불평등하기만한 각양각색의 삶들이 산재해 있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타인을 잘 속일 수 있느냐는 것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척도가 가늠된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건이 타인보다는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타인을 속이는 것을 배워갑니다. 때때로 절묘하게 타인을 속였다는 무용담을 들으며 경외의 감탄을 하고, 나 또한 감쪽같이 타인을 속였을 때 전신을 짜릿하게 하는 통쾌함마저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점점 내가 삶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언젠가는 그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따위 관념적인 회의를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유치한 발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나를 자각하기 위해 이런 식의 표현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또 무시무시한 공룡의 발톱에 끼어 떨어지는 찌꺼기를 받아 먹으면서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먹기 위해 서로를 음해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러는 내가 아직은 덜 궁핍했고 그래서 덜 현실적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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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다리가 휘어지게 내어 온 음식은 푸짐하고 풍성했다. 군침을 돌게 하는 냄새는 저절로 의자를 당겨 앉게 했다. 어떤 것부터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면서 수저를 들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음식마다 뭔가가 빠져 있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말 맛있다고 먹을 수는 없는 맛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너무나 맛있다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10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생전 처음 먹는 진수성찬이라면서 칭찬을 늘어놓지만, 나는 도통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먹을 게 없는 소문난 잔치인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나에게는 그 ‘소문난 잔치’였다. 물론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전3권 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끝까지 탄탄하게 엮어내는 이야기의 힘은 놀라웠다. 아오마메와 덴고, 3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우시카와의 캐릭터는 생생하면서도 밀도 높게 그려졌으며, 캐릭터 각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다음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편집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지를 남겨 두는 솜씨는 감탄할 만 하였다. 일찍이 하루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성공적으로 발휘하였던 그 솜씨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쓰면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구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지만, 거창하게 바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구성은 치밀하였다.


거기에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케 하는 <1Q84>라는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암시하였다시피 빅브라더와 유사한 리틀 피플이 등장하고 소설 속 소설인 ‘공기번데기’와 ‘고양이 마을’을 통해서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문장은 군더더기를 찾아 볼 수 없게 유려하고 또박또박 쓰여진 단어들은 더할 수 없이 빛난다. 곁가지로 등장하지만 체호프와 길랴크인, 칼 융은 소설 속의 은유로 훌륭하게 작용한다. 그다지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도, 그다지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도, 그다지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벌어지지도 않는 2000여 페이지 중에서 들어냈으면 하는 대목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놀랍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되면, 허탈해진다. 진수성찬의 음식을 맛보고 있는데 뭔가가 빠진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싱겁지도 너무 짜지도 않고 갖은 양념의 맛이 느껴지는데 군침이 도는 맛은 아닌 그런 기분이다. 빅브라더를 모방한 것에 불과한 리틀 피플의 존재감과 그들이 만드는 공기번데기가 소설 속에서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따로 노는 점이 불만스럽고, 아오마메가 대머리 중년에게만 성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고, 길고도 강한 팔을 지녀서 어디라도 뻗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무색케 하는 조직 ‘선구’의 어이없을 만큼 무기력한 모습에 실소가 나오고, 한없이 늘어진 덴고의 간병 부문은 3분의 1 정도로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지만, 그것은 진수성찬에 대한 공연한 트집일 수도 있다.

<1Q84>는 많은 이야기와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지만, 결국 덴고와 아오마메가 어린 시절 겪었던 상실의 트라우마를 사랑의 힘으로 치유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2000여 페이지에 걸쳐서 길고도 지루하게 나열한 것뿐이다. 그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이 장만되었고 먹음직스럽게 내 놓아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하루키 자신이 <상실의 시대>에서 하지 않았던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토록이나 풍성하게 음식을 장만해야 했단 말인가? 그 이야기를 또 한다고 해서 감옥에 간다거나 체포가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1984>를 연상할 제목을 달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현실의 고통이 묘파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비록 지금 다시 읽게 된다면 처음 접했을 당시의 감흥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훌륭한 작품이고, <1Q84> 역시 문학적으로 분명 훌륭한 작품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여기,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신자유주의 마지막 발악이 광포하게 세계를 뒤덮고 있으며 끊임없이 탄압받고 있는 인간 정신의 절대 자유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지금의 ‘1984’를 <1Q84>는 진수성찬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양념으로만 사용하였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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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웩이야기

영화2011. 6. 19. 01:32

옌날에 옌날에 오래 된 옌날에, 뒤질랜드라는 나라에는 별의 별 별종들이 다- 살고 있었대요. 고짓말만 하믄 코가 늘어나는 나무 인형부터 시작해서 늑대보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 뙈야지 삼형제, 일곱명이나 되는 난장이를 델구 다니는 불노불사의 공주, 항상 지저분한 쥐떼들을 빠순부대로 몰고 다니는 피리부는 부랑자, 새엄마와 이복언니들의 구박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유리구두 한 짝으로 팔자가 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부억떼기, 게다가 어른이 되는 게 싫다고 자기 그림자를 한사코 띠 놓고 다니는 철부지와 그를 추종하는 꼬마마녀까지 있었어요.

사람들은 뒤질랜드의 별종들을 아주아주 사랑했는데, 그것은 뒤질랜드의 별종들이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래요.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엽기적인 환상을 그 별종들을 통해서 대리 체험하는 까탈시스를 느끼는 것을 좋아했대요.

그 환상의 나라 뒤질랜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드론우웩-스라는 늪지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슐웩이라는 덩치만 졸라 크고 지지리도 덜 생긴 초록 괴물이 살고 있었대요. 전설에 의하면 도론우웩-스를 지배하고 있는 세 명의 마법사 중 하나인 제프레 깝죽버그라는 마법사가 슐웩을 창조했대요.

제프레 깝죽버그는 예전에도 팀 버튼이라고 불리는 반골 내공 10갑자의 초절정 고수와 함께 쿠리스마스 이브에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악몽을 획책한 적이 있었는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별로 쫄거나 겁먹지 않고 강력하게 대항하는 통에 심각한 내상을 입고 한동안 찌그러져 있었어요.

그러다가 에집왕자와 내통하여 홍해를 두 쪽 내더니 엘도라도에 가서 황금을 훔쳐 와서는 한동안 양계장을 운영하기도 했대요. 그렇지만 제프레 깝죽버그는 예전에 팀 버튼하구 획책했던 쿠리스마스 이브의 악몽을 재현해 보구 싶어서 늘상 똥꼬를 긁적였대요.

오랜 세월 똥꼬를 긁적이다가 피떵을 싸기도 하던 제프레 깝죽버그는 드디어 회심의 역작을 창조해 냈으니 이름하여 슐웩이라는 덩치만 졸라 크고 지지로도 덜 생긴 초록 괴물이었대요. 그러니 이 초록 괴물 슐웩의 성깔이 어떨까요? 맞잖어요, 졸라 더러웠어요.

지 생긴 꼬라지가 그래서 그런 걸 가지고 사람들이 지하고 안 놀아 준다고 꼴같잖게 삐져버린 이 초록 괴물은 드론우웩-스 늪에 혼자 쳐 박혀서는 총천연색 동화책으로 똥꼬 닦기, 악어눈깔로 눈깔죽 끓여 먹기, 바퀴벌레하고 거머리가 득시글거리는 진흙으로 샤워하기 같은 걸 하면서 놀았대요.

그러던 어느날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햇님이 바짝 쫄아서 오줌을 지리던 날, 초록 괴물 슐웩은 일생일대의 미수테이프를 자르고 말았으니 바로 수다쟁이 당나귀 똥끼를 만난 것이었어요. 대가리크기가 몸뚱아리 크기하고 비슷한 이 당나귀 똥끼는 함 주둥이가 열렸다 하면 엄청난 속도로 나불거렸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려 한다는 걸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당나귀였대요.

한편, 뒤질랜드에서는 별볼일없는 재능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던 수많은 별종들에게 드디어 운명의 심판이 내려지고 말았으니, 사람들이 더이상 그 별종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말았던 거시었어요. 아무리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대변해 준다고 하지만, 현실감각이라곤 솔잎에 붙은 송충이 발꼬락 사이의 때만큼도 없이 주리줄창 권선징악으로 개그할락 하고 해피엔딩으로 혹세무민할락 하니 식상해져 버린 거시었어요.

그러자 뒤질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위대하신 영도자 팍와도 영주는 줄어드는 관광수입으로 나라 경제가 거덜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어 구국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으니, 쓸모없이 밥이나 축내고 있는 별종들을 모다 내쫓아 버리고 오래전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전설의 제국 아똘랑티스를 뒤질랜드에 재건하여 스스로 제왕이 되려는 야심찬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좁쌀만한 눈깔을 희번덕거렸어요.

근데 그 계획이란 것이 쪽빠리랜드라는 나라에서 이미 신비한 바다의 나댜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얘덜을 열광시켰던 쪽빠리메이션을 고대로 베낀 거래요. 기존의 것을 이리 뒤치고 저리 헤집어 마치 지가 완전한 무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팍와도 영주로서는 이번에도 같은 수법을 울궈먹을락 했던 거지요.

원래 팍와도 영주는 시까고 뒷골목 출신의 천한 종자였는데, 할루드의 미끼마우스부대를 손에 넣은 후 승승장구하여 뒤질랜드를 세우고 스스로 영주가 되었던 거였어요. 그런데 이제 제왕이 되기 위해서 팍와도 영주는 제왕으로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살림이 어려운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려고 했대요.

그래서 기회주의자 미러미러는 세 명의 공주를 팍와도 영주에게 후보로 추천하였는데 그 중에서 (찔러도) 피안나 공주가 팍와도 영주의 맘에 쏙- 들었대요. 하지만 피안나 공주는 입에서 불을 뿜어대는 드라공에게 잡혀서 사방이 용암으로 둘러싸인 성에 갇혀 있기 때문에 팍와도 영주는 야코가 팍- 죽어서 장롱다리를 동동거리며 대책을 강구하다가 늘상 그렇듯이 교활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는 꾀를 생각해 냈대요.

그것은 바로 덩치만 우라지게 크고 절라리 덜 생긴 드론우웩-스의 초록 괴물 슐웩을 이용해서 피안나 공주를 구해 오게 하려는 것이었어요. 니덜도 잘 알다시피 아무리 단순무식하구 덜 생겼더라도 쥔공만 되면 어떠한 난관이든지 아슬아슬하게 잘 뚫고 나가잔아요.

그래서 팍와도 영주는 그동안 밥만 축내고 있던 별종들을 무더기로 드론우웩-스 늪으로 보내 슐웩을 회유하려고 하였고, 그 협상팀의 선봉장이 바로 수다쟁이 당나귀 똥끼였던 거시었어요. 당나귀 똥끼의 숨쉴틈 없이 몰아부치는 수다에 질려 있던 슐웩은 오만가지 별종들이 자신의 드론우웩-스 늪으로 몰려들자 기겁을 하고야 말았어요.

결국 슐웩은 뒤질랜드로 가서 팍와도 영주 앞에서 굴라디에이터 막시와 무스의 흉내를 내어 굴라디에이션을 펼쳐서 팍와도 영주를 뿅가게 했대요. 그리하여 팍와도 영주의 지엄하신 분부를 받잡고 피안나 공주를 꼬불쳐 오는 임무를 맡게 된 슐웩은 수다쟁이 당나귀 똥끼와 함께 환타스틱 어드벤쳐를 떠나게 된 거시었어요.

그 환타스틱 어드벤쳐가 잼있을까요?
예, 절라리 잼있어요.
근데 수다쟁이 당나귀 똥끼는 왜 같이 가는 거냐구요?
다 써먹을 데가 있대요.
피안나 공주를 어떻게 구하느냐구요?
다 구하는 수가 있대요.

말하는 꼬라지가 더이상의 내용을 알려줄 것 같지 않지요? 어데가서 밥이라도 비러먹을라믄 눈치가 빨라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굶어죽지는 않겠네요. 다 얘기해 버리믄 니덜한테두 결코 이득이 아니기 땜에 말하지 않는 거니깐 넘 조까따고 생각하덜 마세요.

그니깐 궁금하면 니돈 내구 극장에 가서 관람하세요. 속는 거 아닐까 걱정하시는 넘들, 최소한 덜 생긴 초록 괴물 슐웩과 수다쟁이 당나귀 똥끼와 (찔러도) 피안나 공주 셋이서 화려하게 수놓는 쑈! 쇼! 쑈! 만으로도 니덜의 생돈 칠천원이 허공에 뿌려진 눈물로 화하진 않을테니 안심하시구요.

오늘 이야기는 이걸루 끝내야겠네요. 아무리 '옌날에 옌날에 오래된 옌날에 로 시작하였다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해서 쥔공들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대요'로 끝날 수는 없는 거잔아요. 가끔씩 이렇게 끝나기도 할 수 있는 거니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사덜 마세요.

그럼, 빠빠루~



 

 

 

 

 



스트로브와 숙명

2002년 2월 22일 오전 1시 26분 15초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에 스트로브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자신에게는 그다지 신뢰할 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이 녀석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여 한심하고 세속적인 싸구려 그림을, 예술이라는 건 몸을 치장하는 모피 코트나 거실을 우아하게 도배해 주는 장식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에게 고가에 팔아넘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몸의 표현대로라면 "고뇌와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이 희극적일 수밖에는 없는 외양을 지녔기에 비극적인" 이 녀석에게 살리에르와 같은 예술적 안목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그의 진짜 비극은 시작된다.

그에게 만일 그러한 안목이 없었다면, 죽어가는 챨즈 스트릭랜드를 살려 주고 그에게 자신의 집을 작업실로 내주고 자신의 부인을 스트릭랜드에게 빼앗기고, 마침내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서는 스트릭랜드와 자기 부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다가 사랑하는 부인의 자살과 오직 자신 밖에는 알아 볼 수 없는 스트릭랜드의 걸작 앞에서 "희극적일 수밖에는 없는 외양을 지녔기에 비극적인" 모습으로 "고뇌와 절망으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숙명이 그렇듯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녕 그런가?
정녕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숙명과도 같은 "어쩔 수 없음"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하고 말 수밖에는 없는 것인가?

아무래도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야 말 것 같다. 패배론적 숙명론자에게 들리는 음악은 Aphrodite's Child의 <Don't try to catch a river>. 그래도 유일한 위안은 음악이다. 며칠째 계속되는 불면의 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Axel Rudi Pell과 Royal Hunt, Rainbow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늘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허기가 밀려와서 꾸역꾸역 허기를 메워야 하고, 똥오줌을 싸야 한다. 존재해야 할 실존적인 이유를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던 존재에게 존재해야 할 아무런 실제적인 이유가 없어져 버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를 강요당하는 현실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나 모든 숙명이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정녕... 그런가?


잠, 환상, 두통


2002년 2월 25일 오후 8시 49분 10초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술담배로 몸을 혹사시켰으니 병이 나는 건 당연하다.
종일 신열에 들떠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담배를 피우면 증상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담배 연기가 고역스럽고 아무런 맛도 느끼질 못하면서 두통에 시달리는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는 온갖 생각들에게 니코틴 한 조각은 작은 위안이 된다.

저녁나절쯤에야 겨우 몸을 추슬러 일어나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눈은 한 자쯤 들어가 있고 얼굴 여기저기에 뻘건 반점 같은 것이 돋아나 있으며 일주일을 깎지 않은 수염은 몰골을 더욱 흉측하게 한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밥을 먹고 약을 먹는다.
약기운에 취해 다시 잠을 청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던 정신은 이내 무한한 시공 속에 내팽개쳐져서 한없는 빛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렇게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간구했건만, 다시 눈을 뜨니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계속 더 아프기로 작정한다. 지금의 나에게 출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탓에 허리가 아플 지경이 되면 일어나 부들거리는 손에 니코틴 한 조각을 끼워서 불을 붙인다. 여전히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다. 두통약을 연식 먹어대지만, 깨질듯이 아픈 머리는 좀체 가라않질 않는다.

점점 가슴까지 답답해져 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대로 딱 멈치어 버리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약을 먹고 약기운에 의지해 잠이라도 청해보기로 한다.


윤동주를 모독하기 위하여

2002년 3월 1일 오전 4시 20분 59초

   새벽이 시작되는 깊은 밤 한가운데 앉아 하늘을 보니
  
오십여년 전에도 반짝였을 별들이
  
오늘도 '바람에 스치'우다가 
   '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는지 
   '
나를 부'른다. 
   '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며
  
깊은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육신은
  
싸늘한 바람 속에서 떨고 있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불쌍한 프로메테우스는 
   '
불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였지만,
  
나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도 아닌데 
   '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을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는 왜 이 밤의 별들을 
   '
아무 걱정도 없이 헤일 수' 없는 것일까? 
   '나이보다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란
   '슬퍼하는 자에겐 복이 있'다는 것뿐이고,
   바닥을 알 수 없이 공허한 이 가슴에는 
   '
꽃처럼 피어나는 피'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해지기라도 할까?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진실로,
  
진실로
   '
부끄러운 일이다.'
 

고뇌

2002년 3월 7일 오전 1시 34분 40초

임의로 중단하고자 하는 것이 중단되지 않고 진행되는 어려운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지구 역시 자전과 공전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 두통과 몸살이 육신에서 조금씩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존재해야 할 아무런 실제적인 이유가 없어져 버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를 강요당하기 시작한지 벌써 2주가 훨씬 넘어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삶들과 부대껴야만 하는 순간순간을 무감각하게 흘려보내면 불면의 밤은 여지없이 멈추지 않고 찾아온다.

봄가뭄이 오래 지속된 탁하고 목마른 대기에 비가 내린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지난겨울과 달리 밋밋하게 끝나가고 있는 이번 겨울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비일까 싶었는데, 비가 그친 하늘에선 영원한 겨울을 준비해야할 나를 위함인지 황량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침에는 싸리눈과 함께 떨어지는 비를 굳이 피하지 않았고 저녁에는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를 정면으로 맞이하였더니 다시 가벼운 한기를 느낀다.
몸을 녹일 요량으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려 얼굴을 적시고 온 몸을 적시는 것을 고개를 숙인 채 바라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의 감촉이 온 몸에 스며드는 순간,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감상의 메아리는 한 번 시작된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한다. 마침내 그 자리에 덜썩 주저앉아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온 몸으로 받으며 오래도록 좁은 어깨를 들썩인다. 


   나의 침묵이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황량하고,

   나의 육신이
   분노한 사티로스의 망령에 쫓기고,

   나의 관념이
   음침한 타락의 발걸음으로 경쾌하고,

   내 대뇌가
   질척이는 진창에 뇌수를 흘릴 때,

   나의 고뇌는,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나의 이 고뇌는
   황홀한 쾌감으로 격렬한 파동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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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문학2010. 11. 10.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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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니던 중에 집을 헐고 새로 지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집 새로 짓는다고 옆집에서 딴지 거는 것 만큼 못된 이웃 있겠냐시던 옆집 아줌마는 집을 헐자마자 옆집 공사로 지반에 균열이 갔네, 벽에 금이 갔네, 민원을 제기했고, 그 바람에 한 2년 정도를 학교 기숙사며 친척집이며 단칸 월세방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결국 그때의 땅에 집을 짓지 못하고 10년 이상 살던 신림동을 떠나 사당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추상같은 마눌님의 위세에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예전에 나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 오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떠돌아 다니던 그 2년 동안 여러 친구의 집을 전전했는데,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9동(지금은 대학동으로 지명이 바뀌었지만)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기생했었다. 친구 집에서 자게 되면 당연히 잠만 달랑 자게 되지 않는다. 맥주라도 사다가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따라 술이 좀 잘 넘어가서 있는 맥주를 다 마시고 술을 더 사기 위해 친구 집을 나서게 됐다. 나온 김에 비됴라도 한 편 빌릴려구 비됴가게로 가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졸라 화끈한 액숑 영화 하나 하구 졸라 쌔끈한 빠굴 무비 하나를 빌려야 할텐데 몬 영화를 빌려야 하느냐로 고민 때리며 걷고 있는 우리 앞에서 어떤 여자애 하나와 남자애 둘이 뛰어 오고 있었고, 그 뒤로 방범 아저씨 둘이 쫓아오고 있었다.

여자애는 거의 고삐리거나 막 졸업한 것처럼 보였고, 남자애 둘은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녀석들이었다. 여자애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뛰다가 우리 바로 앞에서 넘어졌는데, 50대 후반은 족히 되었음직한 방범 아저씨들이 헉헉거리며 뛰어 와서는 여자애를 붙잡았다.

방범 아저씨 1 : 아니, 왜 멀쩡한 빽미러를 부수고 도망 가?

방범 아저씨 2 : 도망간 남자애들, 친구들이지?
여자애 : 아이- 씨- 놔요! 존나 재수없네...
방범 아저씨 1 : 뭐? 아니, 요 쪼그만 게 말하는 거 좀 보게.

그때 먼저 도망갔던 남자애 두 넘이 다시 돌아왔다.

남자애 1 : 아저씨! 왜 남의 여자 손을 만지고 그래요?
남자애 2 : 야, 저치들이 너 때렸냐? 

도망갔던 넘들이 돌아와서 잘 됐다고 잡으려 했던 방범 아저씨들은 어이가 없어졌다. 어쨌거나 파출소로 가자고 두 넘을 붙잡아서 데려 가려는데, 두 넘은 우리가 왜 가냐고 버팅기고 하는 사이 여자애는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 버렸다.

남자애 1 :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래?
남자애 2 : 당신들 혼 좀 나 볼래?

말투가 조금씩 거칠어지던 이 넘들 입에서 욕설까지 나왔다.

남자애 1 : 시바! 조또 아닌 것들이 피곤하게 하네, 정말...

근데 자신의 자식뻘 밖에 안 돼 보이는 새파란 넘들의 기고만장한 큰소리를 들으면서 방범 아저씨들은 오히려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방범 아저씨 1 : 그러게 왜 아무 죄도 없는 빽미러를 때려 부수고 그래?
남자애 2 : 시바!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증거 있어? 증인 있냐구? 
방범 아저씨 2 : 여자애가 그러는 건 내가 직접 봤어. 너희들 그 여자애하고 친구지?
남자애 1 : 아- 우리는 모른데도 그러네. 이거 안 놔? 존 말 할 때 이거 놔!!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도저히 더이상 눈 뜨고 못 봐 줄 지경이었다. 당시 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세상 무서븐 줄은 모르고 지 잘난 줄만 알고 날뛰던 때라 겁대가리 짱박았던 모양이었다. --;;

나 : 뭐, 요따우 개 씨박 쉐히들이 다 있어? 너 일루 와!! 요 씹새야.

그러고는 남자애 한 넘의 멱살을 움켜쥐고 면상에 주먹을 막 날리려는데 방범 아저씨가 결사적으로 나를 막아섰다.

나 : 잠깐만 놔 주세요, 아저씨. 저 조까튼 씹쉐히들이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눈깔을 좀 뜨게 해 줘야겠어요.
방범 아저씨 1 : 학생, 왜 그래? 학생이 그러면 우리가 더 곤란해져.

그 말을 듣자, 어디서 산적같이 생긴 떨거지가 나타나서 깽판을 치자 잠깐 쫄았던 남자애들이 그거 좋은 수다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모양이었다.

남자애 2 : 당신은 뭐야? 방범하구 짜구 그러는 거지? 
남자애 1 : 어디 돈 많으면 때려 봐! 때려 봐!

그러면서도 방범 아저씨들 뒤로 숨는 꼬라지를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서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나 : 아저씨, 애네들 우리가 델구 갈게요. 우리가 쫌만 델구 있다가 파출소로 보내 줄테니 아저씨들 먼저 가 계세요.

흥분해서 펄쩔펄쩍 뛰어 오르는 나를 친구와 방범 아저씨들이 간신히 말렸고, 그 넘들이 방범 아저씨들의 호위를 받으며 파출소로 가는 걸 쫓아갔다가 방범 아저씨들이 따라 오면 안 된다는 간절한 애원에 나는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서 길가에서 악을 바락바락 질러댔다.

나 : 뭐, 이런 조까튼 세상이 다 있냐? 세상에 자기 아버지뻘은 되는 아저씨한테 별 조까튼 애숭이 씹쉐히가 욕지거리를 해 대는데 지나가는 그 많은 쉐히들 중에서 한 넘도 그 애숭이한테 한마디 하는 넘이 없냐? 그렇게 지 몸 하나 존나 잘 건사해서 고시공부만 존나 열쉼히 해라. 그렇게 판검사 돼면 울나라 존나 좋은 나라 돼겠다, 씨벌. 캬- 악- 퉤-



여전히 빡쎄게 공부만 하고 계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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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150kg에 육박하는 거구의 몸을 볼썽사납게 뛰뚱거리며 '거만하고 괴팍한 노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뿐이지만, 스타니 슬라브스키가 주창했던 메소드 연기의 탁월한 전도사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말론 브랜도에게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칼이수마가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 프론트>, <대부> 그리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이르기까지 말론 브랜도를 떼어 놓고 그 영화들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말론 브랜도는 강렬한 칼이수마를 그 영화들 속에서 구현해 냈고 말론 브랜도 칼이수마의 최정점이자 최후로 나타난 영화가 바로 <지옥의 묵시록>이다.
 

그러나 <지옥의 묵시록>을 찍으면서 난항을 거듭하던 코폴라는 고집불통 말론 브랜도의 갖가지 트집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약속한 만큼 체중을 줄이지 않고 나타난 브랜도는 스크립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커츠 대령이라는 이름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라일리 대령으로 바꾸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제작진과의 대화가 순탄치 않게 되자 코폴라는 브랜도에게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죠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읽어 볼 것을 권유했고, <암흑의 핵심>을 읽고 난 브랜도는 다음날 아침 별안간 머리를 박박 깍고 등장하여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완전히 명백해졌다." 

그래서 똥꼬털에 묻어 있는 온갖 분미물들을 탈 탈 탈 털어내고 똥꼬 세척 재계한 후 면벽 참선의 자세로 각 잡고 앉아서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단숨에 정독한 나는, "그래! 이제야 모든 것이 맵핵을 띄운 것 처럼 완죤히 분명해졌다." 라고 선언했.... 으면 좋겠다만... 졸라, 나는 브랜도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박박 깍고 싶은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부터 무려 삼주간을 오만가지 자료들을 긁어모으며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졸라 들뜨고 똥꼬 발발거리는 심정으로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하였고 수십번도 더 본 <지옥의 묵시록> 비됴를 또 봤고 우연한 기회로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다시 한 번 관람하였으나 아직도 나는 포연에 싸인 정글의 한 가운데 내팽겨쳐져 있다.
 

'시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가 글케 골 뽀개는 영화였냐? 조뙜따. 영화사에 남을 전쟁 영화의 걸작이라구 해서 앤하구 같이 볼라구 예매해 놨는데 이제 앤한테 맞아 죽게 생겼따.' 라고 똥꼬 움찔거릴 넘들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쫄 거 없다. 걍 가벼운 맘으로 가서 보믄 글케 잼없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다만 러닝 타임이 쫌 많이 긴 관계로 떵 같은 건 미리 미리 때려 놓고 가는 게 좋을 것이다.
 

영화를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는 것은, 다른 모든 예술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어떠한 예술도 그것이 창작자의 의도 그대로 대중에게 인식될 수는 없으며 대중은 각각의 개인적 경험과 환경에 의해서 똑같은 예술 작품에서 전혀 상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술에 탐닉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이 다양한 예술적 창조 작업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가, 온갖 찌라시들에서 나불거리는 대로 마치 전지구적 신화인양 고무찬양되고 똥꼬를 높이 치켜 들어 경배해야 마땅한 영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온갖 찌라시들에서 한결같이 주둥이를 모아서 똥꼬를 치켜드는 꼬라지에
배알이 꼴려서 어떡하든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의 흠집을 잡아 볼라구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나오느니 감탄의 한숨이요 느껴지느니 쫄아든 뽕알같이 왜소해지는 나의 존재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광기를 탁월하게 묘파한 전쟁영화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묘파했는지 무슨 이유로 그렇게 탁월한 건지는 두리뭉실 넘어가 버리는 여타의 찌라시들과는 격을 달리하여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하면서 니덜이 니덜 앤한테 졸라 잘난 척 할 수 있는 몇 가지 정보 및 해석을 제시해 주고자 한다.
 

어때, 졸라 친절하지? 너무나도 너그럽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 아니냐?
보고 배워라, 응?
 

그러나 앞서 연막작전 핀 것처럼 나 역시 아직도 포연 가득한 정글에 빠져 있는 기분이며, 영화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므로 내 해석에 절대성을 부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보는 관점에는 이런 것도 있고, 어디까지나 니덜 앤한테 졸라 잘난 척 할 때 참고로 써 먹으라는 것뿐이라는 것을 밝혀 두는 바이다.
 

또한 내가 지금부터 풀고자 하는 썰에는 영화의 내용이 다분히 포함될 것이므로 영화의 내용을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을 절대로 싫어하는 넘들은 지긋이 '뒤로' 화살표를 눌러 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나서 이 영화에 선입견이 생겨서 명랑영화관람 추구권을 침범당했다고 복날 썬오브독 처럼 앙탈부릴 태세를 갖춘 넘들 역시 지긋이 '뒤로' 화살표를 눌러 주길 바란다.
 

서론 졸라 길었다. 그럼 본론 들가겠다.
두두둥~ <-- 조또 웅장한 초저베이스 인트로 사운드로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이 영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는 이미 개나 소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죠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1902년)에 영감을 얻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존 밀리어스와 공동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서 1979년 갖은 사투 끝에 제작하였고, 그 해 깐에서 그랑프리 먹고 기타 여기저기서 주는 상 받아 먹다가 1979년 당시의 여러 사정상 짤라 내야 했던 부분을 복원하고 디지떨로 재마스터링하여 2001년 깐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22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하여 세인들의 예민한 귀두를 꼴리게 한 장본인 되겠다.

이 영화의 탄생과 부활에 얽힌 기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천지 사방에 널려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의 기본 정보만 가지고 바로 영화 속으로 쑥- 들어가 보자. 영화는 평화롭게 잎새가 팔랑거리던 조용한 숲이 네이팜탄의 시뻘건 불꽃으로 일순간에 삼켜지면서 시작된다. 

간간히 헬기의 프로펠라 돌아가는 소리가 꿈꾸듯 들리는 가운데 도어즈의 <The end>가 흐르고 불타는 숲을 천천히 보여 주던 화면 위에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거꾸로 누워 있는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 공허하고 무신경한 시선에는 초점이 없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녹음의 숲이 일순간에 시뻘건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에서 전쟁은 그렇게 급작스럽고도 전폭적으로 모든 것을 집어 삼켜 버린다는 것을 상징하고, 그 한가운데 거꾸로 처박혀 있는 우리는 이내 공허하고 무신경하게 전쟁 속에 함몰되어 갈 것임을 보여 준다.

이어서 등장하는 호텔방 씬에서 윌라드 대위 역의 마틴 쉰은 인간의 본질적 고독과 공허 속에서 드러나는 극렬한 광기를 아무리 찬양해도 부족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해 냈다. 원래 윌라드 대위 역에는 하비 케이틀이 내정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약한 듯 하면서도 집요하고 상처받기 쉬운 듯 하면서도 강인하며 졸라 특이한 듯 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윌라드 대위라는 캐릭터에, 만만치 않은 칼이수마를 보유하고 있는 하비 케이틀의 색깔은 부조화스러운 감이 있어서 촬영을 한 달여 앞두고 전폭적으로 마틴 쉰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사실 하비 케이틀 이 넘, 칼이수마 하면 또 한 칼이수마 하잔어. 이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점은 시종일관 윌라드 대위의 시점을 따라 가고 윌라드 대위와 대화하는 사람들은 종종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 보면서 말한다. 그건 관객들로 하여금 윌라드 대위라는 인물과 동화되어 그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데 하비 케이틀 같이 한 칼이수마 하는 넘한테 감정 이입을 할라믄 관객들이 얼마나 껄적지근 하겄냐?

그런 면에서 마틴 쉰을 기용한 것은 매우 적절한 캐스팅이었다고 보여지며, 마틴 쉰 역시 졸라 매력적인 캐릭터인 윌라드 대위역을 절대로 오바하지 않고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물론 그때까지는 거의 무명에 가까왔던 마틴 쉰을 전격적으로 기용하여 그러한 내공을 뿜어 내도록 유도한 코폴라의 연출 공력에 새삼 똥꼬 저미는 감탄이 토해지게 된다만.

아무리 여러번 봐도 전율스러운 오픈닝 시퀀스을 지나서, 상부의 인가도 없이 이중간첩이라는 이유로 4명의 베트남인을 처형한 후 살인죄로 기소된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이 캄보디아 국경 근처로 잠적하여 독자적인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벌이는 것에 위계질서의 위협을 느낀 군 당국으로부터 커츠 대령의 암살 지시를 받은 윌라드 대위가 수송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이 전개된다.

그 에피소드들에서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보여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면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가 바로 서핑을 하기 위해서, 바그너의 <발퀴레> 선율에 따라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헬기 공수 부대를 진두 지휘했던 킬고어 대령(로버트 듀발)이 나온 에피소드일 것이다.

발퀴레는 '전쟁에서 죽은 용맹한 전사들을 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나르는 전령'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니깐 거기서 <발퀴레>를 하늘이 떠나 가도록 틀어댄 건 음악이 웅장하고 멋쪄서만 그런 게 아녀. 죽더라도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으니깐 천국가게 해 달란 것이지. 그러면서 총들고 대항하는 넘이든 도망가는 넘이든, 아새끼든 아녀자든 닥치는 대로 쏴 죽여 버리는 악랄한 야비함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숲 속에 숨어서 대항하는 베트콩 때문에 서핑을 할 수가 없다고 숲 전체를 네이팜탄으로 날려 버린 킬고어 대령에게 있어서 이 전쟁은 서핑조차 맘 놓고 즐길 수 없는 고약스런 것이고 이른 아침 네이팜탄이 휩쓸고 지나간 후 정적 속에서 퍼져 나오는 가솔린 냄새를 맡으면서 희열을 느끼며 피범벅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시체 위에 자신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카드를 던져 놓다가도 부상당한 적에게 값싼 휴머니즘 쪼가리를 내던져 주는 위선과
기만을 몸소 실천한다.

"몸에 벌집을 내 놓고 반창고를 붙여 주려고 호들갑을 떤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위선이다... 역겨운 기만이다..."

코폴라는 그 역겨운 기만행위를 킬고어 대령의 서핑 보드를 훔쳐서 달아나는 윌라드 대위를 통해서 조롱한다. 서핑 보드를 다시 돌려 달라고 헬기를 타고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애걸하는 킬고어 대령은 블랙 코메디의 냉소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킬고어 대령의 에피소드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광기와 위선을 표현했다면,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에 새로이 추가된 장면 중에서 연료를 주고 바니걸들의 몸을 사는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쟁이라는 조롱박에 갇혀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의 한심한 운명을 상징한다.

바니걸과 빠굴을 뜨기 전에 쉐프(프레드릭 포레스트)는 바니걸에게 가발을 씌우거나 가슴을 살짝 드러낸 채 포즈를 취하도록 하고 랜스(샘 버틈스)는 바니걸의 얼굴에 갖가지 화장을 하면서 빠굴을 곧 뜰 것 처럼 하면서 시간을 끈다. 졸라 똥꼬 근지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니걸들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신세에 대해서 횡설수설 늘어놓는데 그 골자는 자기들도 몸 팔아 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전쟁이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끌려들어 왔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전쟁의 한 가운데서 가발을 쓰고 위장을 하고 총을 들어 싸워야만 하는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에서 추가된 에피소드 중에는 윌라드 대위 일행이 프랑스 농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는지 하는 의문점은 차치하고라도 프랑스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프랑스인들의 자격지심이나 베트남전에 미국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끼어들었다는 것 등을 너무 설명적으로 드러내 버린다는 점에서 추가할 필요가 별로 없는 에피소드라고 생각된다.

다가 원래 그 에피소드에는 윌라드 대위와 록산느(오로 클레망)의 환상적인 빠굴씬이 있었지만, 프랑스 농가의 존재가 비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윌라드 대위의 실제했던 경험인지 몽환적인 상상이었는지 모호하게 두리뭉실 처리해 버리기 위해 빠굴을 막 뜨려는 순간 안개에 싸인 배 위에 앉아 있는 윌라드 대위의 모습으로 화면이 싹- 바뀌어 버린다. 졸~ 라, 아깝다. 그치?

이제 마침내 오프닝 시퀀스보다 딱 일곱배 정도 더 전율스러운 마지막 시퀀스에 당도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그치만 자기 자신도 오리무중인 영화를 니덜 모두의 명랑빠굴문화창달을 위한 잘난체용 정보로 환원시키느라 이박삼일 동안이나 두 손꾸락 높이 치켜 들고 자판을 뚜들기고 있는 나를 마저 따라와 주기 바란다.

아마도 커츠 대령과 같이 특이한 캐릭터는 영화사를 통 털어서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일 말론 브랜도라는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커츠 대령이라는 캐릭터가 그토록 강렬하게 특징지어졌을지도 의문이다. 3시간 15분의 러닝 타임 중에 30여분도 미처 등장하지 않는 말론 브랜도는 일순간에 이 영화 전체를 지배해 버린다.

커츠 대령은 고대인들의 생활상와 종교적인 의식들을 기술한 제임스 조지 플레이저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를 옆에 두고 그러한 고대 의식에 따라 종교적인 교주처럼 군림하고 있다. 온갖 찌라시들은 커츠 대령이 명분없는 전쟁에 회의를 느껴 밀림으로 잠적하여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했다고 하지만, 커츠 대령의 행동에는 그렇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동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커츠 대령은 T. S. 엘리엇의 <공허한 인간(The Hollow Men)>을 읊조리며 사람의 목을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따 버리는 비정상적인 존재같이 보이지만, 내부 분열하는 자아의 정체성에 극심한 혼돈을 느끼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진리와 부조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편적인 우리 모두를 대변한다.

윌라드 대위가 강을 거슬러 올라 커츠 대령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은 가장 보편적인 우리 자신의 근원적인 모습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이며, 온갖 모순과 부조리로 둘러싸인 그 근원적인 심연은 뿌연 안개와 탁한 어둠에 싸여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다.

그 고통, 그 끔찍함, 그 공포를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의 핵심에 접근할수록 점점 더 불확실해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 핵심에 접근해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우리 스스로일 뿐이고 윌라드 대위는 또 다른 우리 자신을 대변한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의 상황과 설정과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가 지금 하루 하루 전투를 치루듯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메타포이다. 그것이 22년과 베트남이라는 시공을 뛰어 넘어 우리의 가슴에 전율의 감동을 꽂아 버리는 이유이다. 
어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흔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 가치가 새로워지는 영화는 그리 흔치 않다. 걸작이란 그래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남게 되는 모양이다.



 

지옥철 묵시록

일상2010. 11. 6. 02:24

2001년 8월 23일 목요일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또 잠을 설쳤다.

종일 더위에 지친 채 수면 부족으로 허덕이다가도 막상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잡아먹을 듯 활개를 치던 그 많은 잠귀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두어시간을 뒤치락거리면서 오지 않는 잠을 불러 내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겨우 잠에 빠져 들었다 싶었는데 어느새 아침은 악귀같이 내 뺨을 후려치고 햇살은 똥꼬를 찔러댄다. 가사상태에서 출근을 하고 그렇게 또 하루는 시작된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터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거의 습관에 가까와져 버렸다. 그 자료들 중 90% 이상은 중복된 것이고, 그 중에서 또 90% 이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뿐이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집요하게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지 불분명해져 버렸다.
처음 자료들을 모으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에 대해서 뭔가를 끄적여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꼭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지도 않다.

내 인생에 있어서 <지옥의 묵시록>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이 기회에 규명해
보기 위해서? 가슴 떨리게 고대하고 있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관람이 좀 더 흥미진진해지게 하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처럼 집요하게 하는 것일까?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덥다.
지하철 냉방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코를 간지럽힐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면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열기는 지하철 천장에서 뿜어주는 냉기를 가볍게 제압해 버린다.

누구의 작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지
않나 싶다),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의 고충을 적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감옥에서의 겨울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춥고 고달프지만, 그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건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의 온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감옥에서의 여름 역시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훌쩍 뛰어 넘도록 무덥고
고통스러운데, 특히 밤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열기는 그 고통을 극대화시킨다고 한다.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릴 때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참을 수 없는 열기는 증오를 뛰어 넘어 곧장 살의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꼼짝도 할 수 없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디에도 시선둘 곳 없는 지옥철 안에 갇혀 있는 내 바로 앞에서 엄청난 열기를 뿜어대는 사람이 지독한 몸냄새까지 동반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느낀다.
살의... 말이다.


2001년 8월 24일 금요일

LOST IN A ROMAN...WILDERNESS OF PAIN
AND ALL THE CHILDREN ARE INSANE
ALL THE CHILDREN ARE INSANE
WAITING FOR THE SUMMER RAIN, YEAH

하나씩 접근해 가기로 하자.

묵시록(The Apocalypse)이란 여러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비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문학이라고 한다. <바룩 묵시록> <제4 에즈라서> <요한 계시록>이 1세기 말의 3대 묵시록으로 일컬어지는데 묵시록이 계시록(The Revelation)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묵시록의 내용은 주로 예언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아마겟돈이니 예수 재림이니 최후의 심판 등을
예언하고 있는 <요한 계시록>을 <요한 묵시록>이라고도 한다. 요컨대 묵시록이란 그리스도계의 계시 문학서인 셈이다. 그런데 언어의 미묘한 질감적 차이에 의해서 계시록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세계관이 느껴지는 반면, 묵시록이라고 하면 다분히 부정적인 세계관이 느껴진다.

<Apocalypse Now>를 직역하면 '현대 묵시록' 정도 될 것이다.
영어의 The Apocalypse와 The Revelation의 어감적인 느낌의 차이 역시 우리의 묵시록과 계시록의 차이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코폴라가 '현대 계시록'이 아닌 '현대 묵시록'으로 타이틀을 정한 것은 침울하고 몽환적인 화면과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메세지가 묵시록이라는 단어의 질감과(최소한 우리의 언어적 질감과는) 잘 어우러져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나라에 개봉하면서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한 건,
'지옥'이라는 막강한 단어를 동원해서 묵시록을 더욱 장중하고 비장미 넘치게 만들긴 했지만, 영화의 배경인 베트남 전쟁이라는 '지옥'의 묵시록으로 의미가 축소된 감이 없지 않다. '현대 묵시록'이라는 원제가 내포하는 것은 그 묵시록의 배경이 베트남 전쟁으로 은유되는 현대 사회 전체이며, 전쟁을 통한 인간의 광기는 현대 사회에서 전쟁하듯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광기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옥의 묵시록>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때의(지금이라고 해서 별반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없는 번역이 타이틀을 바꾸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는 두 편짜리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그때의 번역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다. Kilgore를 '킬고'로 Clean을 '클랜'으로 표기한 건 양반이고, Wagner를 '와그너'라고 해 놓았으니 좀 더 심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대사를 어떻게 번역했을지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덥다.
그리고 지하철은 여전히 짜증스럽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은 생활이라는 전쟁에 쫓겨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외양을 하고 있었고 자리에 앉아마자 졸기 시작했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치일 만큼는 아니었지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려면 난해한 몸 비틀기와 사팔뜨기를 해야만 가능할 정도이기에 지하철 안은 예의 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역에 정차하고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또 사람들이 올라 탄다.
갑자기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물결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내 건너편 옆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성큼 나타나셨다. 얼른 자리를 차고 일어나려는 찰나 내 건너편 옆에 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엉거주춤 나는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상당히 빠른 반응이었지만 자리를 양보해 주려는 사람이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그 할아버지는 '에헴-' 큰기침을 한 번 하신다. 얼굴에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역력하시다. 약주도 한 잔 하신 듯한 얼굴이다.

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불그스름한 얼굴을 두리번 거리시더니 바로 옆에서 졸고
있는 그 샐러리맨을 바라보면서 불쾌해 하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신다. 몸을 약간 삐딱하니 하고 앉아서 연신 헛기침을 해 대는 것이 왜 젊은 것이 노약자석에 앉아서 졸고 있냐는 질책이다.

그래도 지독한 피로에 지쳐 있는지 그 샐러리맨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사방을 휘~ 휘~ 둘러 보시던 할아버지는 마침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고서는 출입문 앞에 서 있는 또다른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끌고 오시려 한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것들은 노인 공경할 줄도 모른다는 요지의 고함을 고래 고래 질러대신다.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눈을 뜬 샐러리맨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역정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온 다른 할아버지가 한사코 그 샐러리맨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아 그 샐러리맨은 다시 원래의 자리에 앉는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다음 역에서 내리기 위해 출입문 앞에까지 가 있다가 이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오신 것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을 바라 보면서 나는 문득 JP가 생각이 난다.
오장섭 건교부 장관이 짤리면 결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 (혹자는 이를 '몽니'라는 천박한 용어로 부르더라만)를 내 보이던 그. 그러나 밀려드는 비난 여론를 감당하기 어려워 오장섭 건교부 장관이 경질되고, 건교부와 관련된 전문성에서는 토지공사 사장으로 재직했던 1년 6개월이나 되는 유사경력이 전부이고, JP의 최측근이라는 거 빼고도 도덕성에 있어서 흠잡힐 만한 거 투성이인 김용채 토지공사 사장이 후임으로 임명되자 희희락락해 하던 그.

8.15 민족통일대축전의 방북단 사건으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도마 위에 오르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DJ가 임장관을 싸고 돌지 말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자민련의 수장인 JP.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기득권은 절대로 보호받아야 하고 타인의 실수는 절대로 성토되어져야만 한다는 이 땅의 모든 수구 권력들이 오버랩된다.


2001년 8월 28일 화요일

IT HURTS TO SET YOU FREE
BUT YOU'LL NEVER FOLLOW ME
THE END OF LAUGHTER AND SOFT LIES
THE END OF NIGHTS WE TRRIED TO DIE

THIS IS THE END

마침내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했다. 전날 두어시간만 자고 아침부터 종일 운전하면서 돌아다닌 탓에 몸은 납처럼 무겁고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였지만, 주저 앉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세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자니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루드비코 요법'이라는 세뇌 교육을 받았던 알렉스가 떠올랐다.

물론 자발성의 상이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혹시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결국 내 인식의 한계를 스스로 국한시켜 놓은 채 이미 정해져 있는 완고한 결론으로 모든 것을 아전인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올바른 영화보기의 자세에 있어서, 다른 모든 예술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예술도 그것이 창작자의 의도 그대로 대중에게 인식될 수는 없으며 대중은 각각의 개인적 경험과 환경에 의해서 똑같은 예술 작품에서 전혀 상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술에 탐닉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비록 내가 자신의 독특한 경험으로 인해서 <지옥의 묵시록>을 신성화하였고,
그것이 내 인생의 일정 부분에 지울 수 없는 무게를 달아 맸다고 해서 삭제된 분량이 복원되고 새로이 편집되어 '돌아온' <지옥의 묵시록> 마저도 똑같은 결론으로 인식하도록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를 관람하기 이전에 이미 어떠한 결론, '가슴 떨리게 고대하는 감동'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집요하게 잡아 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픈닝 시퀀스는 전율스러웠다.
아마도 도어즈의 <The end>가 아니었다면 오픈닝 시퀀스가 그토록이나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었을까마는 윌라드 대위 역의 마틴 쉰은 인간의 본질적 고독 속에서 드러나는 극렬한 광기를 아무리 찬양해도 부족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해냈다.

........

아무래도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블랙키 로울리스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이끄는 밴드 W.A.S.P.는
<지옥의 묵시록> 마지막 시퀀스에서 영감을 얻어 앨범 <K.F.D.>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 앨범을 설명하는 자료에는 커츠 대령이 읊조리며 독백하듯 윌라드 대위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인 부분에서 T.S. 엘리엇의 <The hollow men>의 일부가 인용되었다고 한다.
엘이엇이었나? 쉴러가 아니고?

T.S. 엘리엇의 <The hollow men>을 찾아서 읽어 보았고,
<지옥의 묵시록>의 영문 시나리오를 훑어 보았지만 밋밋한 영어 실력 탓인지, 죤 밀리어스 원작 시나리오가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상당한 부분에서 전혀 다른 탓인지, 엘리엇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로를 헤매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 시퀀스에서 소가 도살되는 장면과 커츠 대령이 살해 당하는 장면의 교차 편집이 의미하는 바가 소의 순종적이며 비극적이고 희생적인 운명과 커츠 대령의 운명의 유사성을 상징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아마도 그것은 운명이라는 굴레, 헤어나올 수 없는 그 공포를 스스로는 종결 짓지 
못하는 운명의 유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가 도살되는 제식은 열반으로 향한 향연이지 않았을까?
거의 3주째 지옥이라는 단어와 묵시록이라는 단어의 중간 쯤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는 내 정신의 운명은 어떤 식으로 종결짓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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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엔 캐감동었었지..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연말만 되면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를 보내는 행사에 고등학교 때까지 동원되었었다. 내 또래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싶은데, 초등학교 때 나는 북한군은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고 김일성은 엄청나게 덩치가 큰 돼지의 형상으로 묘사된 <똘이장군>이라는 애니메이션에 감동을 먹었고 실제로도 북한괴로도당과 김일성의 무시무시한 마수가 언제 어느때라도 우리에게 뻗쳐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약했던(-,.-;) 나는 <똘이장군>에 등장한 늑대 형상의
북한군이 쳐들어와서 허겁지겁 도망다니는 꿈까지 꿀 지경이었다. 그래서 국군 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에서 나는, 언제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시는 아저씨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는 요지의 내용을 쓰면서 똥말똥말한 눈을 빤딱이며 스스로에게 뿌듯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너무나도 편협한 파시즘에 세뇌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은 국군 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에 너도 나도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회의하게 하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는 국군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는 것이 전혀 쓸모가 없다거나 위문 편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왜 위문 편지를 매년 연말만 되면 일체의 예외도 없이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말에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된 위문편지에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기술하였고, 이러한 위문 편지에서 과연 국군 장병 아저씨는 얼마나 '위문'을 받는지 궁금하다는 요지의 내용을 쓰게 되었다. 위문편지를 보낸 다음날, 종례가 끝난 후 담생이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귀가하기 전에 교무실에 잠깐 들를 것을 명령하였다. 

--재연한 실제 상황--

담생 : ...이상 종례를 마친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 보며) 백운수!
나 : (화들짝 놀라며) 에... 예?
담생 : (단호하고 강경하며 냉정하게) 따라 왓!
나 : --;;;;;;;;;;;
(주위에 있던 반 친구들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고등학교 1학년때의 담생은 일명 PS(사이코 새디스트)로 불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는데, 여름과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1년 내내 허벅지에 멍자국이 지워질 날이 없을 정도로 우리반 전체에게 현란한 빳따를 휘둘러댔기에 될 수 있는 한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최선책이었다.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어서 부언하자면, 담생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바로 잡고자 빳따를 휘두르게 되면 엎드려 뻗쳐 자세에서 허벅지 부분을 기다란 대걸레 자루로 두 대씩 때리게 되는데, 일단 맞으면 멍자국이 퍼렇게 생겨나고 그 멍자국은 최소한 일주일 이상 지속되며,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담생의 예리한 지도 편달 레이다에 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담생의 빳따 휘두르기는 대부분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간혹 담생의 애정지심을 너무나도 심각하게 촉발시킨 사람은 따로 담생에게 불리어져 가서 어떠한 사랑을 받는지 전설로만 전해지는 탓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음날 도저히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이 피폐해진 모습으로  등교한 그 사람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담생에게 호명되어 교무실로 끌려가게 되었으니, 주위의
친구들은 '넌 이제 조뙜다.'라는 즉각적인 부러움의 시선을 던진 것이다.-.,-; 그렇다. 몬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나는 조뙌 것이다. 담생의 철철 넘쳐나는 사랑이 나에게 쏟아질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위문편지조차 검열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죽지 두번 죽을까? 미지의 공포에 똥꼬를 움찔거리면서도, 아무리 잔머릴 굴려 봐도 그닥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르자 짐짓 당당한 척 교무실로 들어서서 담생의 앞에 마주 섰다.

담생은 그 전날 내가 써서 제출한 위문편지를 손에 들고는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이 눈을 번득였다. 나는 위문 편지가 검열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첨 알았다. 당시에 내가 담생에게 받은 사랑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상상에 맡기겠다.

어제 민방위 교육을 받았다.
8년간의 예비군 훈련이 끝나면 봄과 가을 각 4시간씩 4년 동안 받아야 하는 이 민방위 교육을 받으면서 위문 편지와 같은 획일적이며 그다지 능률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행사가 생각났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도 나는 항상 그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아무 쓸모도 없이 낭비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예비군 훈련에 동원되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향방 훈련이라고 불리는 것은 저녁에 동네 초등학교 같은 곳에 모여서 노리쇠도 후퇴되지 않는 총이 수두룩한 총을 지급받고는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데, 그런 훈련을 통해서 군인 정신이 함양되리라 생각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공연히 동네 사람들에게 위화감이나 조성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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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엄하셨다는 기억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친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돌아가셨고, 나에게 있어 할머니라는 가슴 아픈 명칭은 온전히 외할머니에게서 비롯된다. 유아식 분유는 커녕 너무 빨아대서 어머니의 젖가슴이 까맣게 변할 정도로 빈곤했던 시절, 연년생이었던 탓에 유일한 생명줄을 너무 일찍 빼앗겨버린 나는 하루 종일 빽 빽 울어댔다고 한다.

왜 우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어린 생명은 그저 배고픔을 참아할 수 없어서 목이 쉬어 가고,
그 어린 생명의 소란스러움을 당신의 등에 짊어지고 종일 종종거리시다가 밥알을 으깨어 물과 함께 먹이면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는 어린 생명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지으시던 분이 내 외할머니였다고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의 따뜻함 탓이었는지 나는 유난히 외할머니를 따랐다.
어린 남매를 남겨 두고 외할아버지가 전쟁통에 실종돼 버리신 이후 평생을 농사일과 자손들 뒤치닥거리 하는 것 밖에 모르고 사신 외할머니는 병약한 아들과 철없는 딸이 늘 눈에 밟혀 두 집을 오가시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배고픔에 종일 빽빽거리는 첫 외손자에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 사랑에 보답하려면 할머니를 업고 지구를 한바퀴 도는 유람을 해 드려도 모자랄 터이지만,
아직도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주시는대로 받고만 있고 철없던 때에는 그것이 얼마만한 희생이며 사랑인지 깨닫지도 못했었다. 이유없이 강짜부리기, 공연히 투정하기 정도는 할머니에게는 그저 귀여운 어리광으로 비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나마 어느 정도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만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내가 할머니에게 얼마나 불효막심했었는지 손톱만큼 정도만 깨닫고 있다.

할머니의 성품을 거의 그대로 물려 받은 외삼촌은 술, 담배는 물론이고 가정과 일 외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고 남에게 화를 낼 줄도 다툴 줄도 몰랐다. 치열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고지식함은 융통성없음으로 선량함은 바보같음으로 너무나 쉽게 왜곡되고,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호의적이지도 않다. 고지식함을 조롱하고 선량함을 이용하는 세상은 외삼촌의 삶을 버겁게만 했고 누구에게 불평할 줄도 모르는 그는 그 모든 고뇌를 안으로 안으로만 삭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그러하듯이 불행의 그림자는 그런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온다.
불혹을 갓 넘긴 한창 나이에 간암 판정을 받고 6개월여의 처절한 투병과 가족들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끝내 생을 달리하던 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고스란히 통곡으로 나타내고 있는 내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시며 할머니는 석상처럼 침묵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을 내 어찌 백만분의 일이나마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만, 슬픔이, 그 도저한 슬픔이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어지게 되면 눈물마저 메말라 버리고 일시적 실어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나 짐작해 볼 뿐이었다.

전형적인 유교적 가부장제가 뿌리내린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자란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잘것없는 권위와 부조리한 위계에 길들여져 있었고, 그것의 부당함에 어느 정도 눈을 뜨게 될 정도로 머리가 커지면서 나 자신의 극렬한 모순과 불합리한 행동 양식에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반항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내 안의 파시즘을 극복하려는 과정은 내 가정 안의 파시즘을 거부하려는 버둥거림으로 발전하여 나는 아버지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어느날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대치되어 더이상의 타협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하였을 때, 할머니는 내가 양보할 것을 눈물로 호소하셨다. 할머니의 바람은 고성과 반목, 저주와 냉랭함으로 균열되는 가정이 화해와 평화로움으로 변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할머니는 그것을 순종과 양보로 이루길 바라셨고, 내 신념은 부조리한 강압에 의한
일시적 평화가 결국 더 깊은 상처만을 남길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던가! 어쨌든 나는 당시의 내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출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였고, 머리를 땅에 찧으며 만배사죄하여도 씻을 수 없는 죄악을 할머니에게 자행함으로써 할머니의 여린 가슴을 찢어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떠난 이후 한끼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셨다는 할머니는 병색이 완연한 몸을 벌떡 일으켜 내 손을 어루만지시며 다시 석상처럼 침묵하셨다. 왜소하신 체구가 더욱 왜소해지신 할머니의 물기어린 눈을 바라보았을 때만큼 혀를 물고 그 자리에서 죽고만 싶을 정도로 자신이 미웠던 적도 없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가끔 서울 근교 비닐하우스로 밭일을 나가신다.
아무리 가족 모두가 이제 그만 나가시라고 해도  당신 평생에 유일하게 재미를 붙이면서 하시는 일이니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너무 심심해서 좀이 쑤신다고도 하시고 그렇게라도 바깥 바람을 쏘이시는 것이 오히려 할머니의 건강에 더 좋다는 판단에 이제는 할머니의 밭일을 적극적으로 만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벽부터 하루종일 비닐하우스 안에서 쪼그려 앉아 밭일을 하시는 할머니가 늘 걱정도 된다.

밭일을 가지 않는 날이면 집앞 쓰레기 치우는 일이며 빨래며 집안 청소며,
동생의 두 돌 지난 첫 증조외손자 돌보는 일이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다. 때때로 할머니가 그나마 아직 이렇게 정정하신 건 늘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즐거이 하시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자위하기도 하지만, 연세가 연세인 만큼 할머니의 건강이 항상 염려된다.
  
며칠전 퇴근후 집에 와서 할머니의 방에 인사드리러 들어가 봤더니, 그날따라 많이 핼쓱해진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평소 내가 가면 반가이 맞아 주셨는데 그날은 실눈을 뜨고 나를 보시는데 눈가에 눈물자욱이 선연하고 눈도 잘 뜨지 못하셨다. 더럭 겁이 나서 어디 편찮으신건 아닌가 싶어 이것저것 여쭤보면서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앙상하고 주름지고 거칠거칠한 손.

그 손을 잡을 때마나 나는 한없이 밀려드는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을 느낀다.

"자꾸 눈이 가렵고 눈물이 나."

언제부터 그랬냐니까 이틀전 정도부터란다.

"이제 그만 안양으로 가고 잡프다. 거기서 며칠 살다가 가야지."

안양은 외삼촌의 식구들이 사는 곳이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지만, 꾹 눌러 참고
그런 말씀 하시지 말고 병원에 가서 진료받으면 나아질 거라고, 눈 주위에 뭔가가 나서 그런 거 같다고, 마음 약하게 먹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는 중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할머니를 와락 껴안아 버리고 말았다.

물론 언젠가는 할머니를 보내 드리게 되겠지만, 아직도 나는 할머니가 없는 내 삶이
상상되지도 않고 만일 할머니를 보내 드려야 한다면 과연 어떻게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더더욱이나 상상되지 않는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
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나는 늘 할머니를 생각한다. 이제 와서 하면 뭐 하느냐고, 없어도 불편한 줄 모르겠다고 끝내 고집하시는 바람에 앞니 하나가 빠진 채로 지내고 계시지만, 그 모습으로 웃으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내가 참 행운아라고, 아직도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얼마만한 복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복을, 그 사랑을 만분의 일이나마 돌려 드려야겠지만, 아직도 나는 돌려 드리는 것보다
받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항상 죄스럽고, 그래서 항상 행복하다.


최근 영화 <집으로...>가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면서 흥행에 성공을 하고 있다. 영화는 집안 사정으로 산골짜기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어린 도시 손자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생활방식과 세대차이에서 오는 짜증스러움을 애꿎은 외할머니에게 화풀이해 보지만, 대자연과 같은 외할머니의 사랑을 점차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지난해 신드롬 현상까지 일으켰던 <친구>처럼 <집으로...>도 거의 국민적 정서라 할 만한
'외할머니'라는 소재를 겁없이, 그러나 적절히 활용하여 적극적인 마켓팅과 눈부신 언론 플레이를 통해서 영화 흥행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처럼 부산을 떨어대고 있다.

물론 온통 조폭들의 피튀기는 쌈박질이나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개그가 아니면, 엽기적이고
가학적이며 어이없는 슬랩스틱이 난무하는 가운데 <집으로...>와 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비록 조재현이라는 배우에 기댄 탓이라 하더라도, <나쁜 남자>의 대중적 관심도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으며 <생활의 발견>과 같은 영화가 흥행면에서 비교적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후에 이어지는 '비교적' 비상업적인 영화의 흥행몰이이기에 이제 우리의 영화시장과 저변도 점차 다양해지고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해석도 가능할만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외할머니'와의 내 특수한 경험과 '외할머니'라는 보편적 정서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영화 <집으로...>가 상당한 완성도를 갖춘 가족용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가족용' 영화라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실정이고 보면, 더욱 그 가치를 인정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러나 나는 영화 <집으로...>를 관람하면서 많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의 원류는 외할머니와 관련한 내 특수한 경험이, 영화에서 묘사된 외할머니의모습이 너무 가혹하게 표현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데에서 기인하였고, 그것이 상업적이며 극적 감동을 위해 인위적으로 연출되었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자 불편함은 불쾌함으로 변했다.

그렇게까지 외할머니를 가학해야만 했을까?

그렇게까지 외할머니의 모습을 추레하게 표현해야만 했을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우리가 '외할머니'의 사랑에 감동하고 '외할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손자인 상우역을 제외한 모든 배우를 즉석 캐스팅으로 하여 타큐멘타리처럼 촬영하였다고

하지만, 영화 <집으로...>는 철저히 상업적인 영화이다. 비전문 배우의 즉석 캐스팅이나 타큐멘타리 기법을 차용한 촬영 자체까지 상업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상업적인 의도를 완전히 배제한 영화가 몇이나 되겠는가마는, 문제는 철저히 상업적인 영화이고
상업적인 마켓팅과 언론 플레이에 열을 올리는 영화가 '비교적' 비상업적인 영화로 찬양되면서 예술적 완성도까지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집으로...>는 베스트 극장이나 TV문학관에서 방영하면 딱 어울릴 정도의 소재와 주제의식을 좀 더 예쁘장하고 그럴듯하게 필름으로 담아냈을 뿐이다.

영화 <집으로...>에 관객들이 몰리는 건 상업적인 마켓팅과 눈부신 언론 플레이 덕도 있지만,
더이상 조폭들의 설레발과 과장된 슬랩스틱을 관객들은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급속도로 성숙된 관객들의 욕구는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한 영화로 눈을 돌리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나쁜 남자>, <생활의 발견>, <집으로...>로 이어지는 관객들의 행렬이 그 영화들의 예술적 완성도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나쁜 남자>와 <생활의 발견>의 경우 김기덕과 홍상수가 자신들의 전작들에서 끊임없이 써 왔던 코드와 서술방식, 주제의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영화를 처음 접한 관객이야 신선했을지라도, 그들을 계속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한계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 보였고 그들의 소위 '작가주의적' 영화의 정체를 회의하게 만들어 버렸다.

<쉬리>로 시작된 한국 영화의 중흥은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한국 영화의 관객층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그 관객층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엇비슷하고 고만고만한 복사판들을 양산해냄으로써 남들 다 보는 영화라니까 오랜만에 극장 한번 찾아온 관객들의 발길에 소금을 뿌려댔고, 이제 그 거품이 어느 정도 빠져 나가고 있다.

한국 영화의 진정한 발전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쁜 남자>, <생활의 발견>, <집으로...>와 같은 '비교적' 비상업적이면서 평론가들의 구미에 맞는 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와 추종 일색이 아니라 좀 더 냉정하고 혹독한 비판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마태복음 8:14-15


초등학교 무렵 계란을 준다고 해서 두어번 다녀본 것과,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과 어떻게든 친해 보려고 서너번 다녀본 것 외엔... 이런, 된장... 생각해 보니 쵸코파이를 먹을 수 있고 사역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군생활 중에도 몇 번 다녔고, 대학교가 기독교계였기에 채플을 패스하지 않고는 졸업할 수 없는 절대조건 앞에서 깨끗이 고개숙여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 적도 있으니 기독교와의 인연도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날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가치체계가 그렇게 형성돼
버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철저한 무신론자이다. 물론 인간의 정신세계는 너무나도 오묘하고 방대하여 간혹 과학적이거나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현상,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무한한 정신력에 의한 것이며, 그 정신의 힘은 상상하기 어려운 가능성까지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는 것은 믿는다.

아마도 내가 무신론자인 것은 그 절대적인 정신력의 세계를 믿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안에는 이미 나의 모든 것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정신이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고 믿지 않으면 나타나지도 않는 어떤 존재가 저 하늘 위 어딘가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내 정신세계 위에 군림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운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모든 신-하나님이든 부처든 알라든-이라는 건 그 정신력의 변형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람들 각자는 내재되어 있는 절대적 정신세계가 있으나, 그것이 절대적이라는 자각을 하기 전에 정신세계 속에 어떤 이유나 경로나 형태로든 침투한 신들이, 내재된 정신력이 마치 자신들인 양 들어앉아 버리게 됨으로써 종교라 불리우는 정신세계들의 집단에 편입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건 순전히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이 없는 사람과 남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을 결코 받아 들일 수 없었던 아내는, 비록 지금 신앙이 없을지라도 신앙을 갖으려는 최소한의 노력-교회를 다니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남자와의 사이가 깊어지는 것을 괴로워하였고 급기야 그 남자의 사랑을 회의하게 되었다.

이별을 통보하는 아내의 청천벽력에 화들짝 놀란 나는 바로 그날부터 교회에 나가서 신앙을 갖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아내의 회의를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내 사랑의 깊이를 의심하는 아내의 사랑에 대한 잣대를,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일주일에 한번쯤 좋은 말씀도 듣고 일주일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고, 내 안의 정신은 내가 교회에 나간다고 지옥불에 떨어뜨린다는 협박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내의 뜻을 존중해 주는 것도-비록 표면적일지라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이 아내의 목적이라는 데 있었다.
또한 비록 노력은 해 보겠으나, 아무래도 내가 신앙을 갖는다는 건, 혹시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어떤 불가해한 상황에 내가 직면하여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의지해서라도 그 상황을 견뎌내 보려는 상황에 처해지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과 실천할 수도 없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7년을 꾸준히 교회에 다녔고,
만일 정말로 하나님이 있다면 매우 죄송스럽지만, 거짓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끝에 마침내 아내와 결혼하여 다시 1년여를 교회에 다니고 있다.아내가 교회에서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결혼으로 인해 상당한 거리가 되었음에도 기존에 다니던 교회를 계속 다녔으나, 거리상의 이유 이외에 몇가지 이유로 인해 최근에 아내와 함께 집근처 교회에 등록하여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다니게 된 교회에서 지난주 설교의 주제는 '열병을 치유하는 예수님'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안수하여 치유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을 받아들여 믿고 의지하자 열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역사한 것과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에 복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목사의 설교는 이제 그 열병이라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로 이어진다.
먼저 교육의 열병을 이야기하는 중에 목사는 자신의 아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였다. 목사는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우산 아래에서 나태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 아들은 목사의 뜻에 부응하여 변두리 작은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며 중증환자의 간병인으로 1년여를 봉사하였다고 한다.

목사는 비록 자신의 교육철학에 따라 자신의 아들을 멀리하였으나, 자신의 아들이 중증환자의 똥오줌을
받아내고 그들을 목욕시키는 모습을 '아버지의 눈'으로 보면서 솔직하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목사의 아들은 하버드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자기소개에 기재하였는데, 하버드대학에서는 다른 자격은 볼 것도 없이 그 아들이 인류를 위해 공헌할만한 사람이기에 합격시켜 주었다고 한다.

과연 그것만으로 하버드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현재 우리의 교육이 너무나도 잘못된 열병에 걸려 있으며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거북했던 점까지 솔직하게 말한 목사의 말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기에 목사도, 그 아들도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목사는 정치와 사회의 열병 역시 기독교인들이 솔선해서 치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과거 많은 기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열병을 오히려 부추긴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 예로 목사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착한 여공들에게 공연한 바람을 넣어 노조를 만들게 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된겁니다."

그 훌륭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 목사가,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목사가, 그래서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버드대학에서도 합격시켜준 아들을 둔 목사가 우리 사회의 열병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교육적 진보성과는 전혀 상반된 보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긴 해방후 잘못 맞춘 첫 단추로 인해 수많은 진실들이 묻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받았음에도
아직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나라에서, 경제만 살린다면-과연 그 경제가 죽긴 죽었던 건지 잘 모르겠으나- 사기꾼이든 전과자든 거짓말쟁이든, 이미 오래전에 그 경제를 죽여 놓았던 일당들이든 상관없다는 나라에서, 온전한 가치체계가 성립된다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이비 교인이긴 해도, 나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예수가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빈민, 노동자, 여성, 어린이, 장애인, 병자, 동성애자 등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임하여 그들의 삶과 함께 함으로써 사후 가장 높은 곳에서 추앙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그 예수의 삶을 기록한 것이며, 자신이 스스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비록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해도 예수의 삶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를 믿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이 교통하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부조리를 온몸으로 부딪쳐 깨뜨리려는 책무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예수가 자신의 몸을 던져 전파하려던 사랑이 아니었을까?
예수가 지금 치유해야 할 우리의 열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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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하나의 문장이라도 쓰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단 나으리라 생각해서 기록을 시작해 보려 한다.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다. 그것들을 풀어내려 해 보지만, 매번 다른 무수한 생각들에게 막힌다.  
끊임없이 읽고 또 읽다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결국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조금쯤 쉬워지지 않을까 싶었으나 읽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쓰는 것이 쉬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짧은 글이라도, 하나의 문장이라도 끊임없이 써 나갈 때에야 비로소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부터라도 이렇게 첫발을 내딛여 본다.

"지금까지 씌어진 모든 글 중에, 작가가 자신의 피로 쓴 글만 나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피로 쓴 글, 그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게 될 것이다."  
                                                                 -- F.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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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소바

일상2009. 8. 14. 19:08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식당에서 메밀소바를 주문해 놓고 멀뚱하니 앉아 있다. 한참 쏟아붓던 비가 멈추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려는지 어디선가 매미가 큰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조바심치며 허둥지둥 오전을 보냈지만, 어떠한 생산적인 결과에도 그 결과에 이를만한 일말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 채 때가 되어 끼니를 때우려 식당 의자에 앉아 메밀소바를 기다리며 멍청한 시선을 부정확한 어딘가에 보내고 있다.

멍청한 시선을 받은 부정확한 어딘가는 출입문이었는데, 딸랑이는 소리를 내며 출입문이 열리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20년은 족히 된 듯한 빨간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반팔티를 입었는데, 자세히 보니 반팔티 안에 반팔티를 하나 더 입고 있다. 오래도록 깎지 않은 수염과 멀리서도 술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발그레한 얼굴을 한 그 남자는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 와 식당 안을 둘러보고 있다.

마침 빈자리가 없던 식당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리는 멍청한 시선을 부정확한 어딘가에 보내며 멀뚱하니 앉아 있던 사내의 앞자리뿐이다. 그 사내는 고개를 돌려 바삐 움직이는 종업원들을 바라보다가 혹여 다른 빈자리가 없는지 식당을 둘러본다. 그러나 빨간색 츄리닝 바지의 남자는 사내의 앞자리에 이르러 아무런 양해의 구함도 없이 슬그머니 앉아 버린다.

종업원이 그 남자에게 물컵과 함께 메뉴판을 가져다주자, 메뉴판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는 남자의 모습을 사내는 힐끔거리며 바라본다. 길게 자란 손톱은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고 넘어져서 긁힌 듯한 상처로 보이는 빨간색 자국이 이마에서 왼쪽뺨 위까지 길게 그어져 있다.

마침내 무언가를 정한 듯 남자는 고개를 들어 종업원을 바라보았고, 주문하시겠느냐는 종업원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어딘가를 가리킨다. 남자가 가리킨 것은 즉석떡볶이를 주문하면서 첨가하는 우동사리였다. 종업원이 우동사리만은 주문할 수 없다고 하자, 남자는 라면사리를 달라고 한다.

종업원은 사리는 떡볶이를 주문해야만 같이 주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남자는 그렇다면 천원짜리 음식은 없냐고 묻는다. 천원짜리 음식은 없다는 종업원의 말에 남자는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그러는 동안 힐끔거리며 남자를 보던 사내에게 주문한 메밀소바가 내어져 온다.

사내는 남자에게 애써 무관심한 듯 시선을 떨구고 메밀소바를 먹기 시작한다.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는 사내에게 그건 얼마냐고 묻는다. 사내가 4천원이라고 답하자 남자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쉬며 다시 메뉴판 탐색을 시작한다.

문득 사내는 자신이 계산할 터이니 메밀소바를 드시고 싶다면 드시라고 남자에게 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누구를 동정하는 것이냐는 카랑한 외침이 사내의 귓가를 때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내는 남자와 동석하는 것 자체도 꺼려했으면서 새삼스레 무슨 동정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게다가 그 남자가 과연 사내의 값싼 동정을 기분나빠하지 않을지도 의문이다.

사내는 다시 고개를 박고 메밀소바를 후룩거리며 먹는다. 남자는 결국 종업원에게 김밥을 주문하였고, 종업원은 2천3백원 선불이라고 한다. 이 식당은 원래가 선불제로 운영되고 있다. 남자는 빨간색 츄리닝 바지에서 지갑을 꺼내 5천원짜리 지폐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메밀소바를 먹는 데 열중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내는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힐끔거리다가 근처에 5천원짜리 메밀소바 전문점에 가지 않고 이 식당에 들러 4천원짜리 메밀소바를 주문한 자신을 생각해 낸다. 가벼운 냉소가 사내의 입가에 스민다.
삶이란 이다지도 버거운 것이라는 자조의 냉소...

사내가 메밀소바를 다 먹고 일어설 즈음에 남자에게 2천3백원짜리 김밥이 내어져 온다. 남자는 김밥 위에 고춧가루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냥 살짝 덧입혀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김밥이 빨간색 고춧가루에 거의 가려질 정도로 수북이 뿌리고 있다. 사내는 남자가 그 김밥을 먹는지 어떤지는 보지 않고 식당문을 나선다.

갖가지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사내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이내 걸려오는 전화들과 처리해야 할 일들에 묻혀 생각들은 다시 미세한 파편이 되어 사라져 간다.
무덥고 찌는 듯한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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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행복한가

일상2009. 5. 28. 19:00



노무현 대통령님.

비루하고 넌더리나는 일상중 어느날 아침 당신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실인지 잠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한참동안  TV 화면을 들여다 보다가
"개새끼들... 개새끼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 만들어진 정태춘의 이 노래가
오늘 여기에서 여전히
가슴 속에 켜켜히 쌓이는 울분과 회한과 고통과 슬픔과 함께 갈무리됩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요.


그대, 행복한가   

                                      정태춘 작사/작곡

 
그대, 행복한가
스포츠 신문의 뉴스를 보며
시국을 논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어린이 유괴 살해 기사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보수 일간지 사설을 보며
정치적으로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점심 굶는 어린애들 얘기는 있지, 있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 애들을 굶기고 죽이는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시장 개방, 자유 경제, 수입 식품에
입맛 돋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칼로리와 땀 냄새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주한 미군 기동 훈련과 핵무기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평화와 인도주의의 구호는 있지, 있구 말구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희생양이며 표적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거듭나는 공화국마다
그 새 깃발을 쫓아 행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민족과 역사의 거창한 개념은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막강한 공권력과 군사력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보호하고 지키려는
그 무엇은 있지, 그 무엇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대상이며 주인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끊임없이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매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 그들을 가두는 법전과 감옥이 있지.
법전과 감옥이

그대, 알고 있나
노동하는 부모 밑에 노동자로 또 태어나는
저 아이들, 아이들
그래, 저들은 결국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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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란님에게

영화2008. 4. 22. 01:19


사랑이 어려운 건 가슴이 아닌 머리로 사랑하려 하기 때문이며, 사랑이 어려운 건 내가 다치거나 상처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어려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사랑이 어렵다고 느끼는 건 이론과 실제란 역시나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으로 벌어져 있는 탓일까요?

봄가뭄이 길어진 탓인지 바람이 불면 덧쌓인 황사들이 날라다니면서 시야를 괴롭히긴 합니다만, 어느덧 해는 눈에 띄게 길어졌고 사람들의 옷은 저마다의 화사한 색을 뽐내며 많이 짧아졌습니다. 아직도 미처 겨울옷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옷장 속의 겨울옷들에게는 아직 여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계절은 무심하게 새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합니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지난 겨울이 또한 유난히 추웠지만, 이제 춥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이런 식이지요. 누군가의 가슴이 아무리 지독하게 황량하여 따뜻한 햇살이 도저히 살갑게 다가 오지 않더라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집니다.

아무리 두터운 겨울옷으로도 녹여주지 못했던 깊은 곳 얼음결정들에게 자연적인 화학반응이란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절대로 녹지 않을 것 같이 단단하게 얼어 붙어 있던 깊은 산속 옹달샘에게도 아기 사슴이 찾아 와 목을 축입니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건 절대로 변하지 않고 찾아듭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건 때때로 사람을 많이 무기력하게 합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우주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쳐져 버린 듯한 고독, 태양의 화염처럼 달아오르는 분노에 휩싸여 있어도 지구는 여전히 그 낮과 밤을 번갈아 보여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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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죽음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대의 죽음에 유일하게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법률상의 남편조차도 성가신 법적 절차로 인한 귀찮음의 의미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대가 보낸 편지를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처음 그대를 만난 건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집 <철도원>에 수록돼 있었던 <러브 레터>에서였지요. 거기에서 그대는 다카노 고로의 꿈 속에서 다카노 고로의 의식에 의해 변형된 채 잠시 등장할 뿐이고, 그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그리 길다고 할 수도 없는 두 장의 편지 뿐이었습니다.

어눌한 어투, 문법에도 제대로 맞지 않는 서술, 단순하고 평이한 글일 뿐이었는데 그 편지를 읽다가 나는 그만 딱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어쩔 수가 없더군요. 울다가 괜히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습니다.

'바람도 통하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고 일 년 내내 장마철처럼 암울한 느낌만 드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대는 사랑을... 하셨더군요. '매일 잊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사랑에 빠지시더니 '드리는 거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해 하고 '그래서 말만, 서투른 글씨로, 미안'해 하면서 '세상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랑'을... 하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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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너무나도 애절해서,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다카노 고로에게 질투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허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사랑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실낱같은 희망의 등불일 수도 있는 것인가 봅니다.

만일 그대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대의 죽음은 과연 얼마나 더 쓸쓸했을까요?
만일 그대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대의 암울한 삶은 얼마나 더 절망적이었을까요?
만일 그대의 사랑이 없었다면 다카노 고로가 개같은 삶은 더이상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할 수 있었을까요?
만일 그대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절망의 나락은 그 끝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그대가 사회적인 병균들에게 윤간당한 채 살해되고, 그 살인이 허울뿐인 제도와 법에 의해 파묻혀져 버렸지만 그대는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대의 사랑은 다른 어떠한 이념이나 이상이나 개뼈다귀같은 진리보다도 더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 겨울 어느날 자주가던 극장 1층 로비에서 그대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무심결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러브 레터>라는 원제가 이미 동명의 다른 영화에 사용된 탓인지 그대의 이름인 파이란을 제명으로 하여 그대의 이야기가 영화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을 우리나라로 바꾸어서 최민식이 이강재로 이름을 바꾼 다카노 고로의 역을 맡고, 장백지라는 홍콩 배우가 그대의 역을 맡게 되었더군요. 캐스팅을 누가 담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처럼 딱 들어맞는 배역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포스터가 바뀌었습니다만, 예고편으로 걸려 있던 포스터에서 장백지가 분한 그대는 깊고 섬세한 눈을 지그시 뜨고 가늘고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어 하늘거리는 몸을 지탱하면서 전면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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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고 그러다 보면 알량하게 축적된 지적인 허영이 정작 본질은 외면한 채 껍데기만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면서 분석한답시고 메스를 들이댑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영화를 가슴으로 보지 않고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바라보는 눈의 차원이 달라진 만큼 예전에는 걸핏하면 가슴을 두드렸던 감동의 횟수 역시 눈에 띄게 소원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화를 보고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엉터리로 포장된 영화가 용서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좋은 영화와 아닌 영화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며, 왜 영화를 좀 더 깊이 알아갈수록 감동의 수는 줄어들어 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된장찌개론을 예로 드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 핏자나 햄버거를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쌀밥에 된장찌개가 더 좋아져 가는 이유는 핏자나 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식품보다는 된장찌개와 같은 갖은 양념에 오랜 시간과 정성이 깃들여진 요리에서 우러나오는 그 깊은 맛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영화를 보는 감동의 수는 줄어들지라도 그 영화의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감동의 공명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무작정 분석하려 하는 것이 좋지 않은 습관이듯이 그렇다고 영화의 깊이를 재지 않는 것 역시 관객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객이 끊임없이 영화의 깊이를 재 줌으로써 영화는, 영화를 창조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성숙해져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많이 돌아갔네요. 그대에 대한 사랑이 깊은 만큼 나는 그대의 이야기가 영화라는 것으로 변형되었을 때, 원작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향기가 손상되지 않기를 바랬으며 그렇게 손상된 향기탓에 내가 영화를 보면서 걸핏하면 드러내는 나의 못된 습관인 분석으로 내 시선이 기울어지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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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영화 <파이란>에 대한 다른 누구의 글도 읽으려 하지 않았고, <파이란>의 시사회란 시사회에는 몽땅 응모하였으나 결국 시사회로 그대를 만나지는 못하고 극장에 개봉하는 첫 날에서야 겨우 그대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수놓아 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또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줄 흘리다가 영화가 다 끝나고 극장이 환해졌지만, 붉어진 눈자위를 숨기지도 않고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정말이지 너무나도 오랜만에 아무런 사심도 없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아무런 분석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영화 속으로 깊숙히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작과는 다르게 현실의 희망이란 결국 없다라는 냉소로 마무리짓고, 그대의 상황을 원작보다는 좀 덜 고통스럽게 설정해 놓았으며, 다카노 고로에서 이강재로 이름이 바뀐 캐릭터는 훨씬 더 사실적이며 훨씬 더 찐따같고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영화 <파이란>은 어디까지나 그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대의 그 눈물겨운 사랑,
그대의 그 가슴아픈 사랑,
그대의 그 사랑하는 것 외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찬 사랑,
그러나 세상의 그 누구보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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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지 오늘로 5일째가 되어 갑니다. 그동안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를 비디오로 빌려다 다시 봤고, 원작인 아사다 지로의 소설 <러브 레터>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길고도 깊숙하게 울려 오는 감정의 메아리를 조용히 음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주 내내는 이 행복한 기분이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듯이 이 행복도 결국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행복합니다.

인생은 부침의 연속입니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치열한 자기 반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대의 죽음으로 세상이 뒤바뀌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의 사랑은 계절이 왜 바뀌어야만 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계절이 바뀌듯이 우리의 삶도 조금씩 바뀌어 가겠지요. 그렇게 바뀌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대와 같은 사랑이란 그저 흔한, 아주 흔하디 흔해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아무것도 아닌 자존심이나 내세울 것 없는 신분, 혹은 종교적 인종적 사상적 편견에 서로를 가두어 둔 채 결국은 후회할 짓을 스스로에게 하고 마는 그런 사랑이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라서 아무도 그런 사랑은 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나른하게 감겨오는 봄바람이 너무도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대가 계신 그곳은 어떤가요?
더이상 슬퍼하지 않고 더이상 외로워하지 않고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살고 계시겠지요?

부디 내내 평안하십시요.

이천일년 오월
그대를 사모하는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