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ism, 譫妄,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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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넘나드는 액션과 상상력의 테크니션

인간은 다만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재배되고 실존하는 모든 것은 다만 프로그램되어 있을 뿐이라는 어디선가 들어 봤음직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상상력을, 무협지와 드래곤 볼, 홍콩의 무협영화와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갖가지 플롯과 기교와 소재들을 뒤섞어서 헐리웃의 자본과, 눈을 현란하게 하는 테크놀러지로 제작된 와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를 보고 나오면서, 같이 영화를 봤던 친구 녀석은 입맛을 쩍쩍 다셔댔다.

<매트릭스>는 종횡무진 쟝르를 넘나들면서 상상력을 마음껏 발산했던 <황혼에서 새벽까지>처럼, 기교면에서는 가히 일가를 이루었음을 의심할 수 없는 헐리웃에게 좀 더 신선한, 어쩌면 좀 더 능숙하게 기교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긴 하지만, 종반부에 이르러 상황이 역전되는 과정에서 <제 5원소>의 악몽이 떠올려지자 다소의 실망스러움을 감추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매트릭스>를 꽤 재밌게 봤다. 재밌는 건 잼있는 거니깐.

하지만 친구 녀석는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시작한 그의 헐리웃에 대한 공격은 어느새 우리의 대중가요에게로 화살이 돌려졌다. 처음에는 댄스뮤직에 대한 일반적인 공격에서 시작되더니, 그런 음악을 하는 (그 친구의 표현대로라면 그런 막돼먹은 개날라리들의 춤판을 벌이는) 사람들에 대한 심한 욕설로 발전하더니 마침내는 그런 음악이 우리의 음악계에서 번성하고 있는 이유가 그런 음악에 미쳐서 날뛰는 무지하고 가련하고 넋빠진 대중들의 탓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의 의견에 공감할 수 없다. 나는 S.E.S.나 핑클, H.O.T.나 젝스키스가 어떤 노래를 가지고 립싱크를 하면서 춤을 추는지, 그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조차도 잘 모른다. 그들에게 곡을 써 주고 엄청난 자본으로 밀어주고 있는 이들이나 그들 자신들도 물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며 그들의 음악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음악의 종류가(댄스뮤직이라는 쟝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댄스뮤직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적 노력이나 멜로디나 가사가 있다면 나는 그것도 좋아한다.)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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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덜이 먼 죄가 있겠냐?


나 역시 하등 다를 것 없는 인간이기에 그 친구를 평가절하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처럼 대중적인 예술의 무가치성에 대해 열을 내는 소위 매니아들이 과연 얼마나 매니아다운지 의심스럽다. 우리의 매니아들은 입만 매니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부산 국제 영화제나 부천 환타스틱 영화제에서 밤을 지새며 장사진을 이루는 그 많은 매니아들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이광모나 키아로스타미, 타르코프스키는 고사하고 그나마 실험적인 재미라도 있는 홍상수나 마티유 카쇼비츠,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들도 극장에 간판을 오래 걸어두질 못한다.

우리의 매니아들은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남들이 보지 않는 것, 남들이 듣지 않는 것을 하고 보고, 듣고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 다만 남들과는 다른 것을 즐기고 있다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그 다양성을 고루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을 탓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스스로 매니아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매니아로서의 의무, 혹은 권리를 극대화시킨다면 문화적 다양성이 인정되는 대중예술로 우리의 문화도 발전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도 TV를 통해 '막돼먹은 개날라리들의 춤판'만을 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